한상대 총장 최태원 4년 구형 직접 지시
제267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 한겨레 김정필 기자
한겨레 김정필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3.01.16 13: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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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김정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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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 새해 첫 출근길, 흰눈 쌓인 서초동 언덕길을 조심스럽게 오르다 문득 ‘법조’ 짬밥이 떠올랐습니다. 연도와 손가락을 맞춰보다 어느새 한 손을 더 쓰고 있었습니다. 다른 기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습관이 참 무서운 법이라 남들이 기피한다는 법조 기자실도, 그리 밝은 표정으로 맞아주지 않는 검사실도 이젠 푸근해졌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술자리도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시간이 가져다준 익숙함에 대견스럽다며 자기만족에 취해있다가도, 가끔 ‘도대체 여기서 뭘 했지? 뭘 해야 하는 거지?’란 반성적 문구가 등짝을 때릴 때가 많습니다.
법조 출입기자들은 1면 머리에 큼지막하게 쓸 단독기사를 항상 꿈꿉니다. 그래서 타사 기자들을 물 먹이면 자기도 모르게 어깨도 좀 들썩이고 그럽니다. 이는 법조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겠지만, 워낙 단독기사 전쟁에 열을 올리는 곳이다 보니 유별납니다.
그런데 법조 출입 2년차 때 한 검사의 얘기는 이런 착각을 한순간에 깼습니다. “기자들이 사건 기사 쓰면 몇 프로나 알고 쓸 거 같아?” 그 검사의 질문에 내심 70프로 정도를 생각하고 있던 저는 창피를 무릅쓰기 싫어 조금 깎아 절반 정도로 답했습니다. 돌아오는 그 검사의 답변은 “5프로도 될까 말까”였습니다.
어느 날, 검찰에서 꽤 잘 나가는 간부급 검사가 회식 자리에서 건배사를 요청하기에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외청에 불과한 기관 한곳에 100명이 넘는 기자가 출입하는 출입처는 대한민국에 검찰밖에 없습니다. 사실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수사는 검사가 합니다. 단독기사라고 으쓱 대봐야 검사들이 아는 5프로도 채 안 됩니다. 기자들이 법조를 출입하는 이유는 단독기사를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찰의 사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힘이 있다고 봐주고, 힘이 없다고 없는 걸 끄집어내 수사할 때 누가 견제할까요. 억울한 당사자들의 변은 누가 들어줄까요.”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수사팀 의견을 무시하고 SK사건에 대해 징역 4년 구형을 지시한 것은 검찰 스스로 존재를 부정한 처사입니다. 한 전 총장 취임 이후 숱하게 제기된 ‘검찰 사유화’ 논란의 결정판을 보는 듯싶었습니다. 결심 공판 당시 징역 4년을 구형한 공판 검사는 꽤 억울했는지, 구형 논고에서 울분을 토했습니다. 양형기준에도 맞지 않는 구형이었습니다.
한겨레 법조팀은 이후 일주일간의 취재 끝에 징역 4년을 구형한 구체적인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취재원 보호 차원에서 취재 경위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당시 괜한 오해를 받았던 수사팀 검사들 등에게는 미안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SK사건으로 촉발된 검찰 내분 사태로 검찰의 위상이 땅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매일 밤샘을 하는 검사들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검사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이번 사태로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