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절반만 한 크기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가자. 투명한 블루의 지중해를 낀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져 있는 땅이다. 그러나 천국은 멀고 지옥은 가깝다. 수십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소돔’이 되어버린 이곳에 뛰어든 한국인 기자가 있다.
연합뉴스 카이로특파원 한상용 기자는 지난 19일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 들어가 23일까지 포연이 자욱한 가자의 거리를 피땀으로 취재했다. 회사도, 정부도 말렸다. 아내는 “애들을 생각하라”며 잡았다.
당시 가자는 자칫 지상전으로 확산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달려가야 하는 게 기자의 숙명이다. “이스라엘군의 공습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현장을 취재해야 교전으로 피해받는 주민의 실상, 전쟁의 잔혹함, 주민들의 절규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회사는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제 의사를 존중해 가자 진입을 허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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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이 2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가자시티의 경찰서 부속 건물이 공습을 받고 파괴된 현장 앞에서 취재하고 있다.(연합뉴스) | ||
이스라엘군의 원천봉쇄로 ‘천장 없는 감옥’으로 불리는 가자지구의 현장취재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일과 같다.
이스라엘 주재 한국대사관 측도 최근 3년 내에는 가자지구에 들어간 일이 없다고 한다. 기자로서는 2010년 6월 연합 고웅석 특파원이 진입한 것이 가장 최근 일이다. 그러나 한창 교전이 진행 중인 전시에 투입된 한국기자는 한상용 기자가 처음인 것으로 전해졌다. 통역도, 카메라기자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들어간 한상용 기자는 안전지대에 숨지 않았다. 이스라엘군은 외신기자들에게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며 숙소를 이탈하지 말라고 최후통첩했다. 외신기자들의 호텔 주변까지 유린하는 폭격의 공포에 울음을 터뜨리는 기자들도 있었다. 숙소에 있어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한밤중에도 30분 간격으로 폭격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기자는 이스라엘군의 오인 폭격이 우려되는 지경에서도 유일한 교통수단인 차로 이동하면서까지 가자 주민들의 곁에 다가갔다.
“한국인은 난생 처음 본다”는 주민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에 응대하는 건 사치였다. 바로 옆에서 고막을 찢는듯한 포성이 울리고 이스라엘군의 전투기가 위압적인 굉음을 내며 창공을 가로지르는 그곳에서는 일분일초가 소중했기 때문이다.
평화의 세계와 유일한 끈은 휴대전화였다. 발신만 가능한 전화기에 “여보세요”라고 말할 짬도 없었다. “지금까지는 안전합니다”라는 ‘생사확인’으로 대신하고 이내 기사를 불렀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변한 아기를 안은 어머니의 절규를 전하는 일이 그에게는 더 급했다.
네살짜리 아들과 돌이 막 지난 딸을 둔 한 기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역시 ‘가족’이었다. “가자에서 4가족 20명이 함께 살고 있는 가정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살림살이는 어려워보였지만 어린이들의 순진한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평화를 원했습니다.”
이방인 기자는 하룻밤도 보내기 힘든 이곳에서 170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매일같이 이같은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다. 4박5일 동안 이 처절한 현장을 기록한 한상용 기자는 말했다. “저는 카이로 특파원입니다. 가자지구뿐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 이스라엘, 리비아 모두 제가 맡은 책임지역입니다. 필요하다면 또 달려갈 것입니다. 또 하루 빨리 가자지구 주민들에게도 평화가 찾아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