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파업하지마' 했던 딸에게 가장 큰 선물"

'뉴스타파' 참여하는 황일송 국민일보 해직기자


   
 
  ▲ 황일송 기자  
 
“국민일보를 나오는 순간, 나는 ‘전직 기자’가 아닌 ‘실업자’에 불과했다. 15년의 경력이 무색하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됐다. ‘해고자’라는 이유로 취업에 제한도 당했다. 아내와 중3, 초6의 자식들에게 노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지난달 5일 국민일보에서 해직된 황일송 기자가 ‘무직’으로 지낸 한 달 남짓한 기간을 돌아보며 말했다. 황 기자는 지난 15일부터 ‘뉴스타파’로 출근하고 있다. 제2의 기자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황 기자가 뉴스타파에서 일하게 된 건 그에게 다른 어떤 것보다 막중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해직된 이후 집과 도서관을 전전하며 지낸 그는 “아침에 나설 곳 없는 설움이 이토록 큰지 몰랐다”고 털어놨다.

사실 황 기자는 당분간 기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볼 참이었다. 하지만 해직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평소 관심 있던 해외봉사, 사회구호활동도 희망했지만 역시 해직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었다.

그는 일반 기업 두 군데에 원서를 넣었지만 서류탈락을 맛봤다. 임용규정을 꼼꼼하게 읽고 인사담당자에게 문의를 했다. ‘해직된 경우엔 서류전형 통과가 안 된다’는 답을 들었다. 많은 수의 기업은 해고된 후 3년 이내에 공직에 돌아올 수 없도록 명시한 공무원 임용 규정을 차용한 내규를 두고 있었다.

이근행 PD는 ‘갈 곳 없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뉴스타파에 오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된 딸 이야기를 가장 먼저 했다. “딸이 지난해 말에 ‘아빠, 파업하지 마’라고 했다. 갖고 싶은 게 많은데 아빠가 월급을 못 받으면 곤란하다는 거다. 한 달 동안 놀던 아빠가 일하러 가니까 누구보다 좋아했다. ‘열심히 일해. 파이팅!’ 같은 문자도 보낸다.”

가족부양에 대한 부담으로 오게 된 뉴스타파. 하지만 역시 그는 기자였다. 제도권 신문사의 기자로서는 전혀 몰랐던 것들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단순한 스케치를 위해서도 덤불숲 이곳저곳을 헤쳐야 하는 방송기자의 고충,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는 아이템 발제와 토론문화 등이 그것이다.

또한 팟캐스트의 매력을 몸소 느꼈다. 제도권 언론에 있을 땐 독자의 반응을 알기 어려웠다. 출입처의 반응이 거의 전부였다. 뉴스타파에선 일반 시청자들이 즉각 반응한다. 리트윗을 하며 방송내용을 전하고, 평가를 해주며 함께 호흡한다. ‘22세기형 언론’인 것이다.

반년 가까운 파업과 그 후의 대기발령, 해고 이후 새로운 환경에서 오랜만에 ‘기자’란 이름으로 선 그는 인터뷰 내내 ‘국민일보 기자’라는 이름을 놓지 않을 뜻을 밝혔다. 여전히 집에서 국민일보를 구독하고 있기도 하다. 해고무효소송을 진행 중인 그는 복직이 되면 후배들에게 뉴스타파에서 배웠던 것들을 몸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국민일보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뉴스타파에서 고민한 올바른 언론관에 대해 후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국민일보를 변화시킬 것이다. 파업을 전후해 급격히 달라진 회사 분위기를 못 이겨 떠난 기자들의 의견은 존중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기자들에겐 항상 얘기한다. 너희 다 떠나면 내가 돌아올 의미가 없다고. 계속해서 함께 국민일보가 정론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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