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 간첩사건 추적보도
제262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 한겨레 정환봉 기자
한겨레 정환봉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8.20 11:2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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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정환봉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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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말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비전향 장기수 출신 인사가 군사기밀을 빼돌렸다’는 내용의 기사가 주요 방송과 신문의 머리를 장식했다. 올 4월부터 5월까지 있었던 북한의 위성위치확인서비스(GPS) 교란 공격도 ‘간첩단’이 빼돌린 기술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잇따랐다. 경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이아무개(74)씨를 “간첩 최고위급 상선”이라고 밝히며 군사기밀이 북한에 넘어갔다고 확신했다.
이번 취재는 아주 상식적인 의문에서 출발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의 감시에서 자유롭지 않았을 비전향 장기수가 고급 군사기밀을 빼돌릴 수 있었을까? 군사기술에 대한 전문성이 없는 노인이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기밀을 빼돌려 북한에 넘길 수 있었을까?
광범위한 취재를 시작했다. 애초에 비전향 장기수로 알려진 이씨와 함께 구속된 대북사업가 김아무개(56)씨에 대한 주변취재가 이루어졌다. 가족, 동업자, 변호인, 뉴질랜드에 있는 김씨의 부인과도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기밀을 넘긴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던 전 항공사 직원 정아무개(62)씨도 어렵게 만났다. 취재과정에서 경찰이 군사기밀이라고 판단했던 자료와 이들이 주고받은 메일도 대부분 입수했다. 방위사업청, 군사 전문가를 비롯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도 받았다. 발로 뛴 여러 기자들의 노력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취재 결과는 경찰이 애초에 발표했던 내용은 너무 달랐다. 이씨는 비전향 장기수가 아니라 이미 1998년도에 전향을 한 인물이었다. 경찰이 주요 군사기밀이라고 말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1분도 안 걸려 구할 수 있는 한글파일 1페이지 분량의 자료에 불과했다. 심지어 경찰 자문을 맡았던 방위사업청 등도 자신들이 검토한 문서들은 자료라고 부를 만한 것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결국 검찰은 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간첩 목적수행 혐의가 아니라 간첩 목적수행 예비음모 혐의로 기소했다. 실제 해당 자료가 북한에 넘어간 것도 아니고 간첩행위를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검찰 수사의 결론이었다.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비해 혐의가 대폭 축소된 것이다.
다행히 이번엔 사건의 실체가 얼마나 과장됐는지 드러났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통해 여전히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은 많은 곳에 숨어 있으리란 짐작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귀한 상을 주신 이유는 숨어있는 진실을 밝히는 기자의 본분에 충실하라는 채찍과 격려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