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32년, 우리는 그들을 잊었다
제261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신문 / 전남일보 강현석 기자
전남일보 강현석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7.11 15: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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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일보 강현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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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5·18민주화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광주만의 이야기’가 됐다. 광주에서도 ‘5·18’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자 ‘5·18은 역할이 다됐다’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보수단체의 5·18 부정은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북한 간첩설’이다. ‘남파 간첩들이 광주에 잠입, 항쟁을 배후에서 주도했다’는 것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지만 이런 사람들의 주장이 담긴 글을 읽을 때면 꼭 한번 보여주고 싶다. ‘5월18일 소복을 입고, 5월 묘지에서 소주 한병으로, 어렵게 농사지어 키웠던 금쪽같은 대학생 아들을 잃고 32년 동안 마른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32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폭도’들은 ‘5·18민주화운동 유공자’가 됐다. 일부 인사들은 ‘국가 유공자 혜택을 받게 됐으니 보상은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80년 5월 광주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관심도 희미해졌다. 하지만 80년 5월 광주는 32년째 매년 광주 기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아직도 많다.
전남일보가 5·18행방불명자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취재의 단초는 ‘국격’을 강조하며 호국영령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다.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통해 60여 년 전 전사자의 시신도 발굴이 되는데 왜 32년 전 사라진 5·18행불자 76명의 유해는 찾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산화한 영령의 유해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면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사라진 사람들의 유해도 같은 가치로 찾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다행히도 이번 보도로 인해 5·18행방불명자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일고 있다. 반드시 유해라도 찾아야 한다는 본보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