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역사 기록하며 제2의 기자 인생 시작"

강원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고명진 관장


   
 
  ▲ 영월미디어기자박물관 고명진 관장  
 
“기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인데 스스로의 기록은 남기지 못하죠. 그들의 역사를 차곡차곡 모아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디어기자박물관을 열게 됐습니다.”

사진기자 출신인 고명진 관장(전 한국일보 사진기자·현 뉴시스 편집위원)은 박물관 고을로 불리는 강원 영월에서 ‘기자들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제2의 기자 인생을 시작했다.

미디어기자박물관은 지난달 24일 문을 열었다. 건립은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그는 1994년부터 대학에서 포토저널리즘을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생생한 자료를 보여주고 싶어 과거에 취재하며 쓰던 카메라, 타자기, 방독면, 완장 등을 모았다. 그러던 중 ‘이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 전시하는 건 어떨까’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과거 본보를 통해 이 같은 구상을 밝힌 적이 있는 그는 지난해부터 박물관 고을로 특화된 영월로 귀촌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1998년 폐교된 여촌 초등학교가 미디어기자박물관으로 거듭나기까지 제자들의 도움도 컸다.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어느덧 30대 후반이 돼서 아들, 딸을 데리고 이곳을 찾았어요. 그 중엔 현재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교수도 있어요. 폐교가 박물관이 되기까지 일손이 많이 필요했는데 제자들이 와서 팔을 걷어붙였어요.”

미디어기자박물관엔 전시물 4000여 점과 전·현직 기자들이 기증한 타자기, 카메라, 출입기자증 등의 물품 3400여 점, 과거 정기간행물 1800권이 전시돼 있다.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한 기자상 역대 수상작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현직 사진기자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흔히 박물관이라 하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전시물을 단순히 관람하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미디어기자박물관은 다르다. 모든 전시물을 손으로 만지며 체험해볼 수 있다. 관람과 체험이 하나가 된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스스로 신문을 제작할 수도 있다. 가족신문, 여행신문, 연인신문 등을 만들어 추억을 담아간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데 제격이라 참 좋아해요. 옛날 카메라를 손에 쥐어보고, 1980년대 시위현장에서 기자들이 쓰던 헬멧도 써보고, 마이크를 들고 엄마아빠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는 등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았어요.”

고 관장은 한국일보에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특히 ‘아, 나의 조국’이란 제목의 보도사진은 보는 순간 ‘아, 이거!’ 싶을 만큼 잘 알려졌다. 1999년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세계 100대 사진에 꼽히기도 했다. 1987년 6월26일 평화대행진이 벌어진 부산 문현로터리에서 상의를 벗은 한 시민이 대형 태극기 앞에서 두 팔을 든 채 달려가는 모습을 담아낸 사진이다.

“관람객 대부분이 이 사진을 알아봐요.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실리기도 해 학생들도 알더라고요. 이 작품을 탄생시킨 사람이 저라는 사실이 신기한지 같이 사진 찍자고 요청을 하곤 해요.”

그는 전화 인터뷰 도중 “여름휴가 때 꼭 한번 오라”는 말을 몇 차례 전했다. 이어 “바쁜 일정으로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부족한 기자들이 휴가 때 아이들 손을 잡고 영월을 찾는다면 의미 있는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라며 기자들의 방문을 권했다.

기자들이 스스럼없이 찾아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이 그가 바라는 미디어기자박물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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