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특별기획 '다랑쉬, 침묵의 20년'

제260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방송 / 제주MBC 권혁태 기자


   
 
  ▲ 제주MBC 권혁태 기자  
 
2002년, 온 나라가 월드컵을 앞두고 들떠 있을 그 해 3월. 학부생으로 제주 4·3 답사를 왔습니다. 북촌의 애기 무덤, 커다란 돌로 막힌 다랑쉬 굴. 그렇게 4·3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 인연으로 제주MBC에 입사했고 올해로 벌써 3년째 4·3 특별기획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특별법, 그리고 거대한 기념관. 진상조사보고서와 3만명이 넘는 희생자. 그리고 대통령의 사과. 많은 사람들이 ‘이제 4·3 그만할 때도 된 거 아니냐’는 시선을 보냅니다.

하지만 3만이라는 거대한 숫자 뒤에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제주 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회사가 20년 넘게 4·3이라는 주제를 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프로그램 역시 제주MBC의 역사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지난해 사라지는 4·3 유적지를 취재하다 우연히 발견한 다랑쉬 굴 앞에 사라져가는 비문을 바라보다 문홍종 선배가 던진 한마디가 그 시작이었습니다. “내년에 20년이네 벌써.”

우리는 그 뒤부터 다랑쉬 유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마음 속에 상처는 곪아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쫓아가봤습니다. 그리고 치유의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의 반응 예상대로였습니다. ‘이야기해봤자 언제한번 또 고생하지’라는 대답이었습니다. 중앙정보부와 경찰, 고문…. 이제 90을 바라보는 노인들의 입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는 단어들이었습니다. 부모의 학살 현장을 눈 앞에서 바라봤던 어느 유족은 지금도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했습니다. ‘트라우마’, 그것은 제주를 여전히 옥죄고 있는 실체였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어느 누구하나 선뜻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마침 지난해 미술 치료적 접근법으로 4·3 트라우마 치유에 관한 논문을 쓴 김유경 선생을 만났고 지난 겨울과 봄, 수많은 시간을 유족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김유경 선생의 헌신이 없었다면 이 프로그램은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번 프로그램은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방치된 상처,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인 그 상처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출발점을 제시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조그만 실마리를 하나 찾았을 뿐입니다.

4·3을 그저 제주만의 사건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합니다. 해방공간의 모순과 아픔이 점철된 사건이지만 그저 제주만의 아픔으로 세상은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 불편한 현실을 헤쳐나아가야 할 몫 역시 이 시대 제주에서 살아가는 우리라는 것을 이번 수상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20년 넘게 4·3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제주MBC 보도팀의 노력과 배려, 그리고 언제나 신뢰를 보내주시는 선배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현장을 떠나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동료들에게도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해마다 4월이 지날 때까지 집에 들어와도 우울함 속에 유령처럼 앉아있던 신랑을 언제나 다독여주고 힘을 준,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우리가 왜 제주에 왔는지 생각해라’던 장지영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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