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면 죽는 대한민국, 제2의 석해균은 없다

제260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신문 / 경인일보 최해민 기자


   
 
  ▲ 경인일보 최해민 기자  
 
‘다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아주대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는 “석해균 선장이 오만이 아닌 한국에서 총상을 입었다면 숨졌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먼지 풀풀 날리며 다 쓰러져 갈 것 같았던 오만 현지의 의료시설, 그 내부엔 대한민국이 꿈도 못 꿀 응급 중증외상의료체계가 구축돼 있다는 것이다.

살릴 수 있었던 외상 사망환자들을 살리고자 사생활은 포기한 채 365일을 응급헬기 앞에서 대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높으신 분들의 무관심에 10년째 단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외상센터 구축사업. 그 이야기를 언론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다치면 죽는 대한민국, 제2의 석해균은 없다’ 기획기사가 탄생했다.

말도 안되는 외상사망자 통계에, 대한민국 외상분야 의료체계의 왜곡된 현실, 거기에 전국을 통틀어 외상분야를 그나마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 병원이 그 대단하다는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들이 아닌 수원의 아주대병원이라는 사실, 이 대목에서 이건 ‘국가적인’ 사안이라며 묵과할 일이 아니라 지역언론의 입장에서 경인일보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판단했다.

처음엔 부담이 많았다. 해왔던 이야기, ‘식상한 주제’라는 인식 탓에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365일을 쉬지 않는 이국종 교수와 외상팀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이런 이야기가 단 한번도 제대로 거론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됐다.

기획 기사가 보도되는 사이에 폐기될 것 같았던 이국종 법이 다행히도 국회를 통과해 공포됐고, 반쪽짜리로 그칠 것 같았던 경기지역 중증외상센터 건립에 경기도 또한 240억원을 쾌척하기로 하면서 이번 기획기사는 그야말로 아름답게 막을 내렸다.

취재를 하면서 기자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야에서 묵묵히 사람 살리는 일에 매진하고 사생활은 거의 포기한 채 밤새 환자에 매달리면서도 연봉은 일반 의사의 절반도 안된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직 결혼도 안한 외상팀 여성 코디네이터에게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인생의 낙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점심 먹고 나서 로비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란다. 남들에겐 당연한 일상을 굉장한 ‘낙’으로 여기면서 사람 살리는 일에 인생을 바치는 그들이 있기에 억울한 죽음들이 새 생명을 얻을 기회가 약간은 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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