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20대 여성 피살사건 관련 경찰 은폐 및 거짓 해명

제260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 동아일보 남경현 차장


   
 
  ▲ 동아일보 남경현 차장  
 
기자가 처음 이 사건을 취재할 때만 해도 사건 이면에 숨은 폭발력을 알 수 없었다.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범인 오원춘을 잡은 4월 2일. 시체를 엽기적으로 훼손한 흉악범을 잡았다는 내용이 경찰을 통해 알려졌다. 시체훼손 방법 등으로 볼 때 연쇄 살인마가 아닌지 취재했지만 다른 범죄는 확인되지 않았고 대부분 단신처리나 기사화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경찰 초동수사에 부실 의혹이 있다는 문화일보 보도가 나왔다. 기자도 확인에 나섰다. 경찰은 “안타깝지만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며 확신에 찬 말투로 조리 있게 대답했다. 보도까지 된 사건에 대해 경찰이 거짓말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112 신고시간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뭔가 석연치 않은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통화내역 공개를 요구하며 경찰의 거짓말에 초점을 맞추고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취재결과 신고시간은 15초가 아닌 1분20초로 늘어났고, 통화내용에는 ‘지동초등학교 지나 못골 놀이터 방향, 집안’이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동아일보는 5일 오후부터 기자 4명이 현장 주변 50여 곳의 집을 직접 방문하고 경찰이 탐문했다는 업소를 찾아가 취재했다. 그 결과 실제 탐문수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해당 업소에는 경찰이 찾아가지도 않았다. 경찰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던 것이다.

동아일보 4월 6일자 1면 ‘외면당한 ‘80초 신고’…경찰 거짓말 일관’ 기사가 보도되자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은 자체 감찰 결과를 발표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자 9명을 투입해 범행 현장의 건물 300여 곳을 직접 확인한 뒤 7일자 2면에 보도했다. 또 112 신고내용이 1분20초가 아닌 총 7분36초라는 것을 1면에 보도했다. 112신고시간에 대한 경찰의 거짓말 행진(15초→1분20초→7분36초)은 돌이킬 수 없는 신뢰의 추락을 가져왔다.

경기경찰청은 다시 대국민사과를 했고 9일 조현오 경찰청장은 전격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혔다. 조 청장은 기자회견에서 “6일자 동아일보를 보고 사퇴를 결심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12 신고 시스템과 위치추적, 허위신고 처벌강화 등 치안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가 정비됐다. 특히 112 부실 대응의 원인으로 지목받던 거짓신고, 장난전화에 대한 경찰과 국민의 인식 변화도 가져왔다.

사건 발생 두 달이 돼가지만 아직 이 사건은 진행형이다. 범인 오원춘에 대한 공판도 진행 중이고, 피해 여성의 유족들은 아직도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뼈를 깍는 반성과 쇄신으로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국민들도 일방적으로 경찰만 매도할 일이 아니다. 결국 우리가 믿어야할 것은 미우나 고우나 경찰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우리 사회 모두가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믿음 아래 범행현장 주변을 발로 뛰어준 이성호 기자와 수습기자들, 112의 문제점을 기획으로 다룬 신광영 기자 등 후배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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