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유신시대 회귀…국민에게 재앙온다"
[기협 인터뷰] 방송통신위원회 김충식 상임위원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12.05.30 14:44:56
공영방송 수장, 높은 윤리적 기준 필요해김충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은 현 방통위 위원들 가운데 유일한 기자 출신이다. 28년 동안 언론 현장을 누볐다. 전두환 정권 시절 남산 안기부에 끌려가 취재원을 대라는 고문에 맞서 끝까지 기자 정신을 지킨 일은 안팎으로 회자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남산의 부장들’이 탄생했다. 김충식 위원이 24일에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김재철 MBC 사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청년 기자로서 군사정권에 맞섰던 그가 이제는 공직자로서 행동에 나선 것이다.-직접 나서 김재철 MBC 사장 사퇴를 요구하게 된 배경은“120일 넘는 공영방송 파업은 방송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사장의 부도덕성과 윤리적인 문제가 이렇게 심각했던 적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임명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가 손놓고 있고, 배후라 할 수 있는 청와대가 노조를 고사시키는 계기로 삼으려는 점이다. 김재철 사장의 태도는 유신시대 긴급조치를 남발하던 박정희, 로마시대 폭군 네로가 말기에 취하던 행태와 비슷하다. 마구잡이로 노조원을 자르고 징계하고, 새 사람을 채워 넣어서 버릇을 고치겠다는 식이다. 발단은 자신에게 있고 해결책도 자신이 갖고 있는데 노조를 탄압해서 사태를 마무리짓겠다는 극단적 인식이 안타깝다. 사실 행정기관 책임자가 노사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그래서 100여 일을 지켜보고 방문진 이사장을 초치해 바로잡으려 했으나 한계를 느꼈다, 방치하면 할수록 방송 공공성에 심각한 위해가 되는 상황이다. 비상수단이 필요했다.”
-노조가 제기한 의혹 수준으로 사장이 사퇴할 수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노조가 수사당국에 제기한 고소 내용을 보면 단순한 의혹이라고 볼 수 없는 정황이 너무 많다. 무용가 정모씨 집 주변에서 법인카드를 160회 쓴 것이 포착됐다든가, 지원액수가 물경 수십억에 달한다든가. 이를 검증하기 이전에 벌써 역대 어떤 MBC 사장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들이다. 일반적으로 언론인은 시정잡배에 비해 훨씬 높은 도덕윤리가 요구된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법적 처벌 대상 여부를 떠나서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자격이 없다. 개인적으로 약 30년 동안 언론사에 근무했고 언론사의 위상을 실감하는 사람으로서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방통위 내에서 MBC 파업 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온 것으로 아는데.“비공식·공식 회의에서 수십 차례 이야기했다. 여당 측 상임위원 주장대로 방통위가 노사문제에 개입하는 게 문제 있다고 치자. 그럼 적어도 MBC 사장 인사권을 가진 방문진 이사를 임명하는 방통위가 할 일은 무엇인가. 국민 시청권이 침해받는 상황에서 최소한 방문진 이사장이라도 불러 질책하고 파업사태 해결을 촉구해야 맞다. 김재철 사장만이 유일한 MBC 사장이어야 하는지 재검토도 필요하다. 여당 상임위원들로서는 청와대 의중을 살피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 김 사장을 내려앉히면 생기는 정치적 부담과 다른 파업 언론사에 대한 영향을 걱정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계철 위원장은 전임 최시중 위원장에 비해 입장 차이가 없나.“일단 최시중 전 위원장과 이계철 위원장은 입장과 성격이 다른 듯하다. 최 전 위원장은 정권의 주요 주주 입장에서 방송을 인식했다. 이 위원장은 그런 차원은 아니라고 본다. 대선에 관여한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정권과 연계돼서 위원장이 된 것도 아니다. 최 전 위원장과 같은 의도나 부담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도 자신의 역할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방문진 이사장에게 촉구하는 것 외에 방통위가 할 수 있는 대응은.“방통위 구조가 표결로 가면 어찌됐든 지게 돼 있다. 현실성이 비현실성의 고착화로 이어진다. 한 번 부결되면 다시는 논의할 수 없는 구도가 된다. 그래서 결국 양문석 위원에게 우리 둘이 나서서 비상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으로도 두사람은 김재철 사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김재우 방문진 이사장 역시 비협조적이다.“이번주 중에 반드시 방통위에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여당 상임의원 세 명에게도 우리 입장을 밝혔다. 방문진 이사장이라면 임명권이 있는 방통위에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답변해야 한다. 노사 누가 맞느냐를 떠나 공영방송이 파행 중인데 이사장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 한 마디로 도망 다니고 있다. 여당 상임위원들도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다.”
-KBS도 파업 80일을 넘었고 YTN 역시 해결이 요원하다. “일단은 MBC 문제가 급하지만 더 크게는 방송사 파업은 대선을 앞두고 매우 심각한 사태다. 과거 대통령 선거라면 벌써 대권주자들을 데려다가 검증하는 토론회 등이 진행돼 있어야 한다. 이제 대선이 7개월 남았는데 이렇게 검증이 전무한 대선을 치러본 적이 없다. 1997년 TV토론이 시작된 이후 없던 비상사태다. MBC 문제를 기점으로 해서 언론사 파업이 수습되고 정상적인 언론의 대선 후보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법원이 내린 종편 심사 자료 공개 판결에 따른 파장이 예상된다.“사법적 판결이 있으면 당연히 그에 따라 공개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흥정하고 과다 선정한 것 자체가 문제다. 정치적 고려 없이 했다면 종편과 보도채널 합쳐 1~2개가 엄선돼 시장도 교란되지 않았을 것이다. 과다선정의 부작용이 0%대 시청률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흑막이 있었다면 파헤쳐야 한다. 이를 통해 방송과 광고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 구속 집행정지 결정 전에 수술을 받은 해프닝이 있었다.“치료가 시급했다고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이 따르는 적법 절차에 의거했어야 맞다. 판사도 놀라고 자신의 변호사조차도 모를 정도로 행동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방통위원 활동 1년이 넘었다. 그간의 소회는.“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통합돼 방통위가 됐다. 방송은 가치판단 영역이 있다. 사회문화적 정서라든가 가치관, 공익 기준 등 다양한 스팩트럼이 작용한다. 이에 비해 통신은 경제 기술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방송을 둘러싼 의견대립이 많았다 특히 종편 허가와 후속조치에 대해 여야 상임위원들의 대립이 컸다. 2010년 기준으로 방송은 매출 10조원, 통신은 63조원이다. 매출은 6분의 1 이하인 방송이 소리는 더 크게 난다는 통신업계의 불만이 있다. 어떤 통신회사 관계자는 방통위에서 ‘정책은 없고 정치만 있다’고도 했다. 이해 못할 바 아니다. 방통위는 두 가지를 같이 고민해야 한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추세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런 면에서 방송위원회 분리 독립은 난센스이고 불가능하다. 방통위 때문에 미래 성장동력인 IT가 방송에 치여서 지지부진하다는 비난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새 정부가 모색해야 한다.”
-과거 ‘남산의 부장’들을 통해 독재정권을 고발한 바 있는데 이 정권 들어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지적이 많다.“어제 휴일인데도 MBC에서 기자 세명을 추가 징계한다는 말을 들었다. 박정희, 전두환 이래 이런 일이 있었는가. 방송 상황은 70년대 유신시대로 회귀했다. 소통이 없는 불통의 정치가 언론, 특히 방송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 정도의 안이한 언론인식을 갖고 있는 위정자들, 청와대가 한심하다. 이런 사태를 조속히 반성하고 바로잡지 않으면 정권에가 아니라 국민에게 재앙이 온다.”
-기자, 학자, 공직자를 모두 다 경험했다. 어떤 일이 가장 어려운가.“일의 성격이 다 다르다. 직업의 완성도를 높이기는 기자가 가장 어렵다. 특히 기자는 가치판단을 스스로 선도해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공무원이나 학자는 가치판단을 소개해주거나 절충한다. 내 경우도 그것 때문에 언론인 생활을 마쳤지만 직업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언론인의 길이 가장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