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견된 통합진보당 사태, 진보언론도 반성해야"

[기협 인터뷰]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



   
 
   
 
오래된 병 방조하다 이제 칼 빼들어…진보 소수정당은 홀대·무시


그는 “아직 옷이 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을 떠나 진보신당의 당대표로 현실 정치인의 옷을 입은 홍세화. 우리에게 책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알려져 있는 그가 마주한 현실정치의 벽과 진보언론의 외면은 생각보다 높고 차가웠다.

홍 대표는 지난 2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겨레, 경향 등 이른바 진보언론들이 소수자나 약자에 편에 선다고 말은 하나 정치 부문에 있어서는 반MB 구도 속의 여야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며 “진보정치의 가치를 선거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셈법 속에 구겨 넣었다”며 진보언론의 냉대에 섭섭함을 토로했다.

홍 대표는 통합진보당의 둘러싼 갈등에 대해서는 “4년 전 분당사태를 통해 이미 겪었던 일이 재현돼 착잡하다”며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되는 데 방조하고 무지하기까지 한 진보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비판했다. 이날 인터뷰는 서울 여의도 진보신당 당사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언론인에서 정치인이 된 지 만 6개월이 됐다.
“아직도 실감은 잘 안 난다. 정치 한복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변적 운동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하긴 했으나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하다. 한동안 여기서 벗어나기 참 어려울 것 같다.”

-4·11 총선과정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언론의 냉대가 못내 섭섭한 것 같다.
“조직 내적 역량과 관계없이 진보언론의 홀대에 대한 섭섭함이 컸다. 후배기자들에게 기자 정신을 가진 기자가 돼야지 동향 보고자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치인들의 말과 일상적인 일을 쫓아가며 동향보고 하기에 바빴다. 한국의 기자들에게서 기자 정신을 갖고 분석과 전망에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냉대라고 실제로 느낀 이유는.
“진보신당을 출입한 기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문화, 지식, 출판 쪽에서는 외국의 진보 학자들의 책을 소개하고 진보된 나라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그와 같은 정책을 하겠다는 정당은 무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 1번에 청소노동자 김순자씨가 배정되자 외부칼럼에서 관심을 가진 뒤에야 내부적으로 소화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냉대를 절감했다.”

-이슈가 넘쳐나는 총선국면에서 지면의 한계로 보도하기 힘든 면도 있다.
“MB정권의 실정을 비판하는 전선에 충실할 수밖에 상황적 조건도 있다. 여기에 갇히다 보니 소수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구도로 스스로 빠져 들어가지 않았나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겨레는 지난달 19일 열린 ‘4·11 총선보도 평가 간담회’를 통해서도 소수정당 보도가 부족했음을 반성했다. 당시 백기철 전 정치부장은 “진보신당과 녹색당의 미래지향은 우리 신문 가치와도 맞다. 좀 더 전향적으로 반영했어야 했다. 우리가 부족했다”고 자평했다.

-현재 통합진보당 사태를 놓고 일각에서는 진보언론의 책임론도 거론된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주류파의 독주를 충분히 비판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는 4년 전에도 충분히 겪었던 일이라 저로서는 여러 모로 착잡하다. 오늘의 모습은 4년 전 지금의 당권파가 일심회 사건 연루자 제명안 등 당 혁신안을 전면 거부하면서 빚어진 분당사태에서 이미 예견됐다. 당시 그런 비민주주적인 폭력사태가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이미 진보정당은 병이 깊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병이 커지는 과정에서 진보언론들은 방조하거나 심지어 무지하기까지 했다. 이제 와서 모두 다 집도의가 된 양 칼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 저는 외려 아무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다.”

한겨레가 지난 14일 사설 ‘이런 후진적 정당에 진보의 미래 맡길 수 있나’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비판한 데 대해서도 홍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지금까지 그 정당에 진보의 미래를 맡기는 데 한겨레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요? 아니면 그 정당의 후진성을 이제야 알아차렸나요?”라고 한겨레를 향해 비판했다.

-왜 진보언론들은 분당사태에 대해 적극적인 보도를 주저했을까.
“2008년만 해도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소수파들을 억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야무야 묻혀간 것이다. 여기서 기자들은 이런 편향을 가진 헤게모니가 작동할 수 있었던 기제에 대한 다각적인 성찰을 했어야만 했다. 당시에는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덮고 넘어간 것이었다.”

-결국 통합진보당 구당권파가 헤게모니를 빼앗길 상황에 직면하자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인가.
“그렇다. 진보정치에 대해서 많은 실망이 있겠지만 어쩌면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었다. 진보정치, 노동조직, 언론, 지식인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볼 기회다. 사실 한국사회의 노동과 정치에서 현란한 단어들이 난무하지만 그런 언어에 비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성숙도는 낮은 수준이다.”

인터뷰 막바지에 홍 대표는 세계적 페미니스트 작가 나오미 울프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가 저항하고 싸우는 과정은 싸움과 저항을 통해 획득하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진보정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올바를 수 있도록 계속해서 공부하고 감시하고 비판하는 게 진보언론 기자들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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