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제259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신문 / 국제신문 오상준 기자


   
 
  ▲ 국제신문 오상준 기자  
 
3D, 4D시대에 ‘촌스러운’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정신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향수와 추억을 제대로 자극하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작품이다.

‘부산은 무엇을 기억하는가’ 시리즈 역시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동상, 기념비, 기념탑 같은 부산의 ‘기억 자산’을 끄집어내 재조명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부산은 항구도시인 데다 해방으로 말미암은 귀환동포와 6·25 전쟁으로 생긴 피란민의 대규모 유입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임시수도, 부마항쟁의 도화선 같은 다양한 역사적 기억이 빚어졌다. 이제야 그때 그 시절의 추억과 기억의 흔적을 더듬어보지만 상당수가 사라지거나 방치된 상태다. 부산이 경제 개발과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리즈가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단순히 회상하고 소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기억 자산’이 일상생활 속 오늘날의 의미를 찾아내고 부산의 정체성을 짚어보며 나아가 부산의 문화·관광·청소년 교육자원으로 끌어올려야 기획기사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부산대 사회학과 박재환·김희재 교수가 이끄는 ‘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 회원들과 지난해 7월부터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스터디를 하고 현장을 찾았다. 작업의 진척은 더뎠지만 폭넓은 시각에서 기념물을 통해 본 부산의 기억을 정리할 수 있었다.

11회의 시리즈가 마무리될 때쯤 다행히 부산시가 기념비, 동상을 비롯한 공공조형물에 대한 체계적 관리에 나섰다. 대학, 연구소, 지자체를 비롯한 지역사회가 부산의 기억을 자산화하기 위해 시민강좌를 마련하는 등 기억 자산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유럽의 전통 있는 도시를 보면 도시의 가치는 고층 건물이나 긴 다리가 아니라 스토리텔링을 갖춘 기억 자산에 달려 있다. 독일 로렐라이 동상, 덴마크 인어 동상, 벨기에 오줌싸개 동상이 그렇다. 기억 자산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화·관광·교육자원뿐만 아니라 도시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도시재생의 밑거름이다.

어쨌든 부산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도시이지만 이 시리즈를 제대로 ‘기억’해주신 이달의 기자상 심사위원의 안목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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