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깨어진 약속
[제25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 / 한겨레 정은주 기자
한겨레 정은주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5.16 16: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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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정은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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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깨어진 약속’을 준비할 때 저는 ‘자기검열의 덫’에 걸려 있었습니다. 지난 1년간 장밋빛 전망만 내놓는 정부에 맞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그림자를 보도했더니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에게 3억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고소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소환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기획기사를 또 쓴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업 속에서도 권력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 ‘PD수첩’팀을 보며 용기를 냈습니다. 한·미 FTA에 대한 찬성, 반대를 떠나서 이명박 정부가 재협상을 약속한 ISD가 앞으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지, 또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언론인으로서 밝혀낼 의무가 있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ISD를 경험한 적이 없는 우리나라에는 관련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현직 판사 100여 명이 ISD 연구의 필요성을 대법원에 건의했을 정도니까요. 이에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ISD 소송사건을 많이 경험한 북미 국가를 방문해 현지 법률가, 정치인 등을 취재하기로 했습니다. 또 ISD가 제기되면 소송이 진행될 곳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 방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취재에 부정적이었지만 한국인들이 ISD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를 끈질기게 설명해 취재 협조를 이끌어냈습니다.
미국 투자자에게 30건의 소송을 당한 캐나다 법률가들은 ISD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히며 한국 정부가 전담팀을 꾸려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미국에서도 권력이 국민에서 기업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차 지난 선거 때 ISD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기획기사가 나가자 국내외 대학 교수와 대학원생은 물론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생까지 연락해 관련 보고서와 취재원 연락처를 문의했습니다. 이들은 북미 국가가 경험한 ISD를 교훈으로 삼아 우리 정부가 재협상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외교부는 관련 자료를 요청하기는커녕 ‘한겨레’ 기획기사를 비판하는 해명자료만 연일 내놓았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자기검열의 덫’을 벗어 던지고 언론인으로서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야겠지요.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