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근로자 '특고'를 아시나요?

제257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CBS 권민철 기자


   
 
  ▲ CBS 권민철 기자  
 
어느 날 아침 깨어보니 나는 대학교수가 아닌 ‘특고’라는 이름의 해괴망측한 자영업자로 변신해 있었다. 나는 교수 연구실을 빼앗겼고, 제자들은 나를 더 이상 교수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나를 지식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대했다. 나는 그들에게 따지지만 그들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갈수록 열등감, 불면상태에 빠져들고 급기야 실어증(失語症)에 걸려 병원에 입원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 같은 이야기지만 2012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화다. ‘특고’는 특수고용근로자의 줄임말이다. 내용상 사용자와 고용관계에 있으면서도 고용계약 대신 사업자 관계를 맺은, 내용상은 근로자이지만 형식상은 자영업자인 회색지대의 노동자를 말한다. 주로 대부분 서비스 업종에 종사하는 이들의 숫자는 적어도 25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용자가 이들 멀쩡한 노동자를 하루아침에 사장님으로 변신시켜 놓은 이유는 자명하다. 공식적으로는 근로자가 아닌 만큼 그들에게 노동자의 권리를 충족시킬 필요도,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용자로서는 꿈의 노동자인 셈이다.

그러나 노동자성이 부인된 특고들의 노동 실상은 우리사회의 노동빈민이라는 비정규직보다 심각한 경우가 허다했다. 명백한 산업재해로 하반신이 마비됐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는 물류 기사, 50원 때문에 파업을 벌였다는 우체국 택배기사, 42세에 정년퇴직을 당했다는 골프장 경기보조원, 노조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새벽이면 협박 문자에 시달려야 했던 학습지 교사, 하루 2시간씩밖에 잠을 못 잤다는 치기공사,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타인보다 월급은 1/50에 받지 못하는 단역배우, 월급이 60만원이었다는 방송작가 등 우리가 인터뷰한 특고들은 우리시대의 숨겨진 수드라(Sudra)였다. 허탈한 것은 그들 대부분이 자신이 특고인지, 특고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들을 취재하면서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회복해주는 의식화교육(?)까지 병행해야 했다.

알고 보면 특고는 우리가 미처 적극적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뿐 사실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지 상당히 오래된 직업군이다. 그러나 특고 문제가 복잡하고 또 파편화돼 있어 이 문제에 대한 구조적 접근이나 심층적인 분석은 유보돼 왔다. 그러는 사이 특고의 숫자는 최근 7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했다. 공존 사회, 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기업의 이윤만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탐욕이 특고의 무분별한 양산을 낳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기획으로 우리사회 곳곳에서 내연(內燃)하고 있는 특고 문제가 점차 대폭발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 끝으로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특고 문제를 명민하게 간파하고 취재에 열정적으로 임해 준 장규석, 조태임 두 후배에게 감사의 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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