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기자들에게 필요한 건 '연대성' 회복"
제43대 한국기자협회장 당선자 CBS 박종률 기자
이대호 기자 dhlee@journalist.or.kr | 입력
2011.12.14 15:21:30
해직기자 문제 최우선 해결…양대 선거 공정보도준칙 마련박종률 당선자가 선거후 처음으로 찾은 곳은 부산일보였다. 사장이 세운 윤전기를 기자들이 돌리며 편집권 독립의 상징으로 떠오른 곳. 소유 재단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기자들은 기자협회의 엄호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해고된 노조위원장과 대기발령 상태의 편집국장이 박 당선자를 맞았다. 이들은 징계에 의연했고, 언론자유 수호에 기자답게 나섰다. 박 당선자는 이 현장에서 기자협회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확신하는 듯 했다.
부산일보 기자들의 절박한 사정을 듣고 상경하는 길, 박 당선자는 “기자들이 기자협회를 피부로 느끼게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기자협회의 내실을 다지고 존재감을 높이고 연대를 강화하겠다는 포부다. 인터뷰는 9일 밤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KTX 안에서 이뤄졌다.-첫 직선제 기자협회장이다. 당선소감은.“직선제로 당선된 첫 회장이다 보니 회원들이 기대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후에 기자협회를 제대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20대 처음 기자를 시작할 때 사명감에 불타던 초심, 협회장 선거에 출마할 때 가졌던 두렵고 설레던 초심, 그리고 당선된 후 회원들에게 가진 감사한 초심, 이 세 초심을 끝까지 간직하겠다. 그동안 기자협회가 단합과 결속력이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회원들의 힘을 모으고 언론노조 등 유관기관과 협조해 1964년 창립 취지에 맞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단체로 만들겠다.”
-어떻게 기자협회장 선거에 출마할 결심을 했나.“지난해 연말까지 3년2개월 간 워싱턴 특파원을 했다. 거기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내게 할당된 기사를 때우는 식의 직장인 개념이 아니라 좀 더 책임 있는 자리에서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지난해 9월 워싱턴의 특파원 모임에서 출마의 뜻을 밝혔고 귀국해서 줄곧 출마를 준비해 왔다.”
-당선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나.“기자생활 20년 동안 굴곡이 많았다. 해고가 돼 백수생활도 했고 특파원까지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버티고 일어서는 자생력을 CBS에서 키웠다. 전주가 고향이다. 인터넷, 방송, TV, 라디오 다 해봤다. 지역간, 매체간, 직종간 교집합을 많이 가지고 있어 설득과 양보가 가능하고 득표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기자협회장을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은 있었다.”
-매사에 그렇게 자신감이 있는가.“목표로 한 것은 대체로 관철하는 성격이다. 평소에 자기암시를 많이 하고, 스스로 외부압력을 만들어 나를 구속하기도 한다. 내일 일은 모르기 때문에 오늘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자는 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혹시 정치적인 꿈을 갖고 있나.“배지 달려면 정치부장을 하지 기자협회장을 하지는 않는다.”
회장은 대표 일꾼일 뿐…회원들 신뢰 바탕으로 개혁 이뤄내겠다-어떻게 기자협회를 이끌 것인가.“우선 회장은 대표 일꾼일 뿐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 앞장서서 일을 하긴 하지만 ‘나를 따르라’는 아니다. 기자협회라는 집에 주인은 회원이고 회장은 세입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회장은 도배 정도만 할 수 있다. 분열된 틈새를 꼼꼼하게 메우고 좋은 벽지로 도배를 하겠다. 이렇게 잘했다는 평가를 받으면 신뢰를 바탕으로 발코니도 확장하고 리모델링도 하겠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속도보다 방향을 먼저 생각할 것이다.”
-임원들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기자들이 기자협회에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자리를 늘려야 한다. 부회장과 분과위원회, 특임위원회 위원들을 임명해 책임감도 높이고 참여도 늘리겠다.”
-기자협회는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기자협회는 ‘기자’들의 ‘연대’조직이다. 이 말은 언론사들의 조직이 아니라는 것이고, 계모임이나 친목단체처럼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연대는 기자들이 기자로서의 초심과 양심을 간직할 때 언론사의 벽을 넘어 가능하다. 언론자유가 침해되고, 기자가 탄압받고 해고되면 소속 언론사를 막론하고 연대해 싸워야 한다. 이게 기자협회고 내가 출사표에서 말한 ‘언론의 화개장터’다. 기자들이 개별언론사 소속감 못지 않게 기자협회 소속감을 느끼게 하겠다. 기자협회 안 하면 아쉽게 만들고 싶다. 문화일보 등 탈퇴한 기자들도 가입시키겠다. 조·중·동의 회원수도 늘리고 싶다.”
-직선제로 유권자가 많았는데 선거운동은 어떻게 했나.“선거운동은 직선제답게 회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자는 것이 목표였다. 전국의 회원사 대부분을 방문했다. 상대후보로 출마한 매일신문과 전남매일에도 갔다. 서울의 회원사 중에는 연합뉴스처럼 한번 인사하는데 2시간이 넘게 걸린 곳이 있는 반면 1시간 넘게 차타고 가서 겨우 몇 명 보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모든 회원사를 돌았다는 기록을 세우고 싶었고 이 간절한 마음으로 앞으로 2년을 살 작정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회원들은 무슨 요구를 많이 하던가.“지역에서는 중앙과 지역의 차별을 해소해 달라, 연수기회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고 선거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소위 진보매체의 회원들은 “기자협회 똑바로 하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신문시장 양극화 해소와 종편에 대한 대응은 기자협회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안타까웠다.”
-기자들의 연수기회를 늘리겠다고 했는데.“연수기회를 확대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 1인당 연수비를 조금 낮추되 언론 기금 등을 확보해 전체적으로 기금을 늘릴 것이다. 그러면 현재의 예산에 조금 더 보태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수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단기연수도 활성화 시켜 지방과 전문기자들에게 많이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언론종사자공제회법, 2013년 입법 목표로 사전 정지작업 추진-언론인공제회는 여러 번 추진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했다. 복안이 있나.“2013년 4월 임시국회를 목표로 언론종사자공제회법이 입법될 수 있도록 내년에 사전 정지작업을 할 것이다. 회원들 설문조사부터 해보고 각계각층의 이야기도 들어볼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언론을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이러면 기자의 권익과 복지는 저절로 가능해질 것이다. 공제회법도 마찬가지다. 이 첫 단추를 제대로 꿰겠다.”
-방송기자연합회 등 매체별, 분야별로 분화된 기자 조직이 많다. 이들과는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기자협회 산하는 아니지만 유관단체들이 있다. 방송기자연합회, 사진기자협회, 편집기자협회 등이다. 우리 협회의 분과위원회를 강화해 이 단체와의 교류를 모색하겠다. 공동사업도 모색하고 잦은 만남을 가지며 기자협회가 모협회의 역할을 하는 틀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
-YTN, 부산일보, 국민일보, 진주MBC 등 현 정부 들어 해직된 기자들이 많다.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일단 YTN의 경우 전 회원사 기자들의 탄원서명을 받아 대법원에 제출할 것이다. 부산일보나 국민일보, 진주MBC에 대해서는 언론노조, PD연합회 등 언론단체들과 힘을 합할 것이다. 탄압과 징계는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다. 남 일이 아니라는 마음을 모아서 적극 대처하겠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기자협회는 무엇을 할 계획인가.“선거에서는 언론의 중립성이 항상 문제가 돼 왔다. 내년 선거에서는 기자협회에서 공정보도 준칙을 마련해 회원사에 배포하고 기자들이 지키도록 하겠다. 90년대 초에도 이런 공정보도준칙이 마련된 적이 있다. 시민사회와 연계해 선거보도심의위원회 구성에도 참여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첫 직선제에서 65%의 투표율이 나왔다. 5번의 투표 기회가 휴대전화로 주어졌는데도 이 정도의 투표율에 그친 것은 이를 악물고 투표를 안 한 기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기자협회가 해준 게 뭐냐는 불만이 집적된 것이기도 하다. 초심을 잃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한 기자협회의 새로운 원년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관심과 참여로 힘을 보태주길 바란다.”
<박종률 신임 회장은>
박종률 43대 기자협회장 당선자는 1966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했다. 전주 영생고와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신문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박 당선자 집안은 언론인 3부자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전북일보 편집국장과 주필, 논설고문을 지낸 고 박규덕씨이며 형은 박종권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JTBC 특임위원이다. 이런 집안 분위기 탓에 박 당선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기사와 논설 원고 교정을 보며 놀았고 아버지와 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기자가 됐다.
1992년 CBS에 입사한 후 사회부, 정치부, 문화부, 경제부 등을 거쳤다. 2000~2001년 CBS노조의 265일 총파업 과정에서 해고됐다가 2001년 12월 복직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후 2005년 기자협회 CBS지회장을 역임했고, 2007년에는 아침종합뉴스 앵커를 맡기도 했다. 2007년11월~1010년12월 워싱턴특파원 생활을 3년 넘게 했고, 2011년 복귀해 국제부 부장대우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 ‘정치하는 기자, 취재하는 기자’, ‘화이트 하우스의 블랙 프레지던트’가 있다. 1994년 제26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