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로비 대상 정치인 할당 파문

제252회 이달의 기자상 경제보도부문 / 매경 고재만 기자


   
 
  ▲ 매경 고재만 기자  
 
이번 기사는 당초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과 삼성, 현대차, LG, SK 등 4대 그룹 구조본부장이 조찬간담회를 열어 재계 공동 사회공헌사업을 논의한다는 제보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재계가 뜻 깊은 일을 하는 것을 널리 알리는 ‘좋은’ 기사가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매일경제 보도 이후 전경련은 예정됐던 간담회를 전격 취소하고 “재계 공동 사회공헌사업은 현실성이 없어 폐기했다”고 밝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전경련이 4대 그룹과 충분한 협의 없이 설익은 내용을 무리하게 추진했던 것으로 재계 반발에 부딪히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것이었습니다.

기자는 사실과 다른 전경련의 주장을 기사화했고, 전경련의 한 간부는 전화를 걸어와 “언론중재위 제소 등 강력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전경련이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을 보인 게 이상했습니다. 무언가 다른 배경이 있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후속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재계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전경련이 주요 그룹 사회공헌 담당 임원들을 불러 회의를 열었고, 이 자리에서 ‘투자, 고용, 감세, 양극화 관련 향후 홍보계획’이란 항목이 적힌 문건을 배포한 것입니다. 대기업 임원에게 해당 문건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끈질기게 설득하고 한밤중에 집까지 찾아간 결과 해당 문건을 확보했습니다. 문건의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전경련이 주도해 여야 핵심 정치인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로비 계획을 세우고 이를 회원사인 주요 그룹에 할당한 명단이 들어 있었습니다. 기자는 정치권 등까지 전방위로 취재해 해당 명단이 포함된 문건의 사진을 찍어 매일경제 8월 5일자 1면에 ‘전경련, 로비대상 정치인 할당 파문’이란 제목의 톱기사로 단독 보도했습니다. 그 후 추가 취재를 통해 전경련의 거짓 해명도 밝혀냈습니다.

자칫 재계 공동 사회공헌사업 무산 해프닝이라는 평범한 기사로 끝날 뻔했던 기사가 끈질긴 의구심과 기자정신으로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폭로하는 ‘나쁜’ 기사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과거 정경유착으로 인해 한국 정치와 경제는 큰 후퇴를 거듭한 바 있습니다. 21세기에도 장막 뒤에서 몰래 이런 일이 꾸미고 있었다는 데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건강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기업이 건전해져야 합니다. 대기업의 부정과 탐욕을 견제하는 게 언론의 핵심가치라고 확신합니다.

취재를 적극 도와주신 박재현 편집국장과 전병준 부국장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정경유착의 폐해가 드러나는 폭로성 특종기사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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