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시중은행 가계대출 전면중단

제252회 이달의 기자상 경제보도부문 / 연합 홍정규 기자


   
 
  ▲ 연합 홍정규 기자  
 
우리는 ‘빚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 한 편 보고 나면 내용보다는 중간 중간 반복적으로 노출된 대출광고가 뇌리에 박혀 있다. 인터넷을 접속해도, 지하철을 타도, 거리를 걸어도 사방에 대출광고다. 여기저기서 보증도, 담보도 필요 없으니 자기네 돈 좀 빌려다 쓰라고 아우성이다.

그들이 권한대로 우리는 빚더미에 앉았다. 가계부채가 (계산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무려 900조원을 넘었다. 은혜와 원수와 빚은 꼭 갚으라던데 과연 이자라도 제때 갚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운 금액이다.

몇몇 시중은행에서 지난 8월17일부터 가계대출이 전면 중단됐다. 금융회사가 대출을 중단하다니? 대출을 해야 이자를 받고 직원들 월급도 줄 텐데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필자는 물론이고 이번 사안을 같이 취재했던 안승섭, 이봉석, 최현석 기자 모두 은행들이 대출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라 당국과 은행들에 거듭 확인했고, 취재 결과 드러난 것은 900조원을 넘는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막장 드라마’ 같은 현실이었다.

가계대출 중단 사태는 작게 보면 은행들의 ‘오버’와 당국의 매끄럽지 못한 대응이 빚어낸 촌극이었다. 가계대출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하자 금융위는 각 은행의 부행장들을 불러 다그쳤다. 그러자 은행들은 일선 창구의 대출을 끊어버렸다. 은행들의 행태가 두발을 단속하는 교사에 반항하는 뜻으로 머리를 박박 밀고 나타난 불량학생 같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그 와중에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대출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상황도 연출됐다.

하지만 이 같은 사태로 흐르게 된 과정을 되밟아보면 우리 경제의 문제점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가깝게는 전세가격의 급등을 꼽을 수 있다.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다 보니 급한대로 은행 대출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세가격 급등을 대출 ‘수요’로 이해한다면 오랜 기간 유지된 저금리는 대출 ‘공급’을 늘렸다.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성장하겠다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다 보니 돈이 걷잡을 수 없이 풀렸고, 은행들이 이 돈으로 대출 경쟁에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깊숙한 곳엔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강남불패’ 신화 속에 탐욕을 추구하는 개인이 가계부채를 늘렸고, 경제의 건전한 발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금융회사의 탐욕과 만나 어마어마한 ‘빚의 제국’을 만들었다. 한없이 커질 것만 같던 거품이 터지면 누가 가장 먼저 고통을 받는지 여러 차례 똑똑히 목격했다. 이번 기사가 부채의 벼랑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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