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구, 산림청 산사태 예보 경고 묵살
제251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CBS 김수영 기자
CBS 김수영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9.21 15: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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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김수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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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중부지방 곳곳을 할퀸 다음날인 7월 28일 오전. 전국곳곳에서 발생한 산사태 현장에서 끊임없이 전해지는 인명피해 소식에 점차 무감각해지기 시작하던 즈음, 우리의 귀를 잡아끌던 뉴스가 있었습니다.
“산림청이 산사태 경보와 주의보 발령지역을 32개 시·군에서 77개 시·군으로 확대하고, 산사태 위험지역에 주민 대피령을 내렸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흙더미에 깔려 죽은 채 실려 나오는 현장과 오버랩 되면서 이 뉴스는 묘한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산사태 예보제도가 있었는데 이렇게 됐단 말이야? 산사태 관리시스템에 대한 취재는 이 같은 평범한 뉴스보도에 대한 직관적인 의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우리는 산림청의 통보기록과 지자체의 특보발령 기록을 일일이 대조했습니다. 그 결과 서초구청이 수십 차례의 산림청 권고에도 특보를 발령하지 않은 사실을 처음 확인했고 다른 지자체들 역시 늑장 발령으로 화를 키운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이를 특종 보도했습니다.
서초구청의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1년 전에 똑같은 사고를 당하고도 원인조사조차 하지 않았고 4년에 걸친 산림청의 산사태 관련 행정지도를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안전불감증은 서초구청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산사태 경보발령을 내린 지자체 재난담당 공무원들조차 경보발령 사실을 몰랐고 산사태 예보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했습니다.
산림청이 수십억 원을 들여 구축한 ‘산사태위험지관리시스템’의 예측력은 현저히 떨어졌고, 지자체의 전임자나 심지어 퇴직공무원에게 SMS로 전달하는 등 정보 전달에 치명적 맹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부가 관리 중인 산사태위험지역 가운데는 이번 폭우 때 산사태 300여건이 발생한 서울경기지역이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는 등 허술함 투성이였습니다.
이 같은 여러 방면의 문제점을 지적한 특종을 연이어 생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난해 우리의 연말 기획보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겨울, 여름철의 다양한 재난이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인 정황들을 광범위하게 짚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우면산 산사태 문제를 조망했지만 계절 탓인지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7개월 전의 보도 경험은 이번 폭우 취재에 큰 자산이 됐습니다. 이번 비피해의 핵심이 산사태라는 점을 직시하면서도 우면산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던 것, 발 빠르게 산사태 전문가들을 확보해 맥을 짚어갔던 것이 바로 선험적 학습효과 덕분이었다고 판단합니다.
우리의 연속보도 이후 다른 언론사의 지적 역시 이어졌고, 전국 지자체와 산림청이 결국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산림청은 산사태위험관리시스템을 개편한다고 발표했고, 산사태의 피해를 키웠던 토석류관리지도도 내놓았습니다. 산림과학원은 산사태 예보 산악 기상망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고, 각 지자체들은 개발행위허가 제도개선 TF팀을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폭우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는데 몇 개월 뒤면 또 다시 폭설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폭설 역시 ‘100년만의 폭설’식으로 규정짓는다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례 없는 폭설 피해,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종류의 기사가 다시 특종기사로 생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