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았다, 후배 기자들이여 깨어나라"
변상욱 CBS 대기자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11.09.21 14:4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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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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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 CBS 대기자의 책상은 CBS 보도국 출입구 바로 앞에 있다. 보도국장보다 선배인 경력 29년의 최선임 기자라면 ‘구중궁궐’의 상석을 원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이 자리는 정말 중요합니다. 보도국을 찾는 손님들을 제일 먼저 맞는 곳이잖아요.”
이렇게 변 대기자는 천생 현장 체질이다. 부산본부장을 역임하다가 지난해 10월, 16개월 만에 다시 일선으로 돌아왔다. 부산에 내려가기 전부터 고위 경영진에 “본부장을 마치면 꼭 기자로 복귀시켜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높은 곳만 향하는 세태와 다른 모습이다.
청취자들은 아침 8시30분이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기자수첩 코너를 운영한다. 출근길을 아늑하게 하는 온화한 음성과 함께 행간에 담긴 촌철살인은 우리의 영혼을 각성시킨다. 정치권력, 재벌, 공직사회 그 어느 곳도 그에게 성역이 될 수 없다.
그는 얼마 전 기자수첩에서 “기자들이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없어져 간다”고 질타했다. 언론비평도 그의 단골 메뉴다. 동업자 비판이 터부시되는 언론계 풍토에서 30년 대기자의 외침은 남달라 보인다.
“1970~80년대 기자의 최후의 보루는 ‘인간의 염치’였어요. 경향신문의 전태일 열사 분신 보도, 동아·중앙의 박종철 고문 치사 보도가 대표적이죠. 그런데 X파일 보도 후에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요.”
이러한 언론자유에 대한 소신은 그의 기자 인생을 보면 이해가 빠르다. 그는 ‘변 PD’로 언론사 생활을 시작했다. 1982년 입사 당시 CBS가 신군부의 조처로 보도 기능을 박탈당해 공식적으로 기자를 채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음지의 기자’가 됐다. 직함은 PD지만 사실상 기자로 일하며 군부독재의 감시망을 피해 다른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는 민주화운동 소식, 해외의 반독재 운동 움직임 등 ‘민주화의 복음’을 전파했다.
하늘은 청년 기자의 진심을 배반하지 않았다. 1987년 보도기능이 회복된 뒤 대통령 선거를 맞아 변 대기자는 구로구청 부정투표 의혹 사건 현장 취재에 나섰다. 웬만한 언론사들은 어용으로 몰려 접근조차 어려울 때였다. 구청 안에 들어가 취재를 원하는 기자들에게 시민들은 말했다. “CBS 기자와 외신 기자만 들어오라.” 독재정권 시절 피눈물로 싸우며 보도했던 용기를 시민들이 기억해준 것이다. 그는 이후 1988년 언론사 노조 결성 붐이 일 때 CBS노조 초대 공정방송위 간사를 지낸 것은 물론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 전신) 초창기 멤버로 언론개혁운동의 기틀을 다지는 데 일조했다. 사내 민주화 운동에도 나서 2000년 CBS노조의 장기 파업 당시 사장 용퇴를 촉구하는 간부 성명을 주도했다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변 대기자는 과거의 무용담에 안주하지 않는다. 그의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 남은 기자 생활 동안 그의 꿈은 “정보의 수집과 전파가 초고속으로 이뤄지는 SNS 시대에서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또 시대를 뛰어넘어 남을 수 있는 책을 쓰는 게 꿈이다. 자신이 오랫동안 공부해온 ‘이야기 신학’처럼 취재기록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대중들에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를 고민하고 있다.
변 대기자의 나침반은 동아투위 선배들이다. 어떤 언론개혁 집회에도 가장 먼저 왔다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들. “그들이 버텨줬기 때문에 한국 언론의 타락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노병의 분투’를 보고 후배 기자들이 좀더 성찰하고 언론의 본연을 지켜주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변상욱 대기자의 기자수첩은 ‘온 에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