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무시 3색 신호등

제24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중앙일보 박성우 기자


   
 
  ▲ 중앙일보 박성우 기자  
 
화살표 3색 신호등 취재는 그야말로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했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4월 기존 신호등을 모든 전구에 화살표가 들어간 3색 신호등으로 교체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저희 취재팀은 이게 웬 영문인가 싶었습니다. 신호등처럼 온 국민이 매일 보는 것이 없는데 왜 갑자기 멀쩡한 신호등을 바꾸겠다는 건지, 그렇게 엄청난 교체 작업을 하면서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기는 한 건지, 화살표 3색 신호등이 뭐가 좋은지, 우리나라 신호등 체계가 지금까지 그렇게 후진적이었는지 등 의문이 의문을 낳았습니다.

 당장 화살표 3색 신호등이 시범 운영되고 있던 광화문 앞에 나가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민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단순히 처음 보는 신호등이라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신호등을 바꾸는 거냐”고 묻는 시민들이 더 많았습니다. 특히 “빨간 색 좌회전 화살표가 들어오면 가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에 취재팀은 화살표 3색 신호등과 관련한 모든 것을 파헤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가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신호등 교체 작업을 추진해 온 것인지를 알아보고 교통정책을 총괄하는 경찰의 설명은 타당한 것인지 검증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2009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주문으로 경찰이 화살표 3색 신호등 아이디어를 냈고, 그 과정에서 형식적인 공청회만 열었을 뿐 일반 시민의 의견을 구한 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경찰은 화살표 3색 신호등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주장했지만 취재 결과 신호등은 나라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한 달여의 집중·심층보도 끝에 경찰은 결국 화살표 3색 신호등 교체작업을 철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는 근래에 정부가 언론 보도로 인해 정책을 접은 드문 사례로, 취재팀은 저희 기사가 대한민국 언론의 위상을 높였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무리 정책 입안자들이 좋다고 하는 정책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추진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습니다.

때마침 서울시도 국민들 사이에 찬반이 분분한 주소 변경(번지 대신 도로 위주의 새 주소) 정책의 시행을 연기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정부 내에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정책 추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은 게 이번 보도의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상 수상을 계기로 저희도 앞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는 기사를 발굴하고 보도하는 데 매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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