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수막염 훈련병 사망

제24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군의 명예를 우습게 아는 겁니까. 군대는 다녀왔습니까.”
군 의료체계의 허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을 때 군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내뱉은 한 마디였다.

잠시 말문이 막히고 10여 년 전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훈련병 딱지를 떼고 육군 모 사단 감찰참모부에 배치된 첫날, 선임병은 말없이 두툼한 서류철을 펼쳐보였다.

서류철에는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 병사, 야전 상의의 허리끈으로 목을 맨 병사 등 각종 사건사고로 숨진 병사의 사진이 스크랩 돼 있었다.

머리가 절반만 남은 병사의 사진을 가리키며 선임병은 “흔한 일이지. 군대가 이런 데야”라고 했다.

선임병의 말처럼 군 생활 동안 일주일에 2~3번꼴로 전군에서 전파한 사고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사라지고 기계적으로 사고사례를 스크랩하게 됐다.

10여 년이 지난 올해 5월 초, 육군훈련소에서 야간행군을 다녀온 노모 훈련병이 고열에 시달리다 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군 생활 중 접한 수많은 사고사례 중 하나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취재할수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허술한 군 의료체계의 실태가 낱낱이 드러났다.

야간행군을 마치고 연대 의무실에 간 노 훈련병은 군의관의 진료도 받지 못한 채 의무병이 멋대로 처방한 타이레놀 2정만 받아들고 내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밤새 고열에 시달린 노 훈련병은 다음날 민간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어렵게 연락이 된 노 훈련병의 아버지는 더 어이없는 사실을 들려줬다. 부검결과 노 훈련병은 뇌수막염을 앓고 있었다는 것이다.

군은 뇌수막염에 걸린 훈련병을 환자로 분류하지 않은 채 기초군사훈련 과정 중 가장 힘든 야간행군에 내보냈다. 행군 복귀 후에는 고열에 시달리는 노 훈련병을 내버려둬 숨지게 했다. 환자 발견에서부터 관리, 치료에 이르는 군 의료체계의 전 과정에 큰 구멍이 나 있었던 것이다.

노 훈련병의 죽음과 허술한 군 의료체계의 실태가 알려지고 나서 군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도 군 의료체계를 대폭 손질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병사의 목숨보다 조직의 명예를 우선하는 군 간부의 의식 변화가 없는 한 근본적인 개선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부디 병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대해주기 바란다. 그것이 군의 명예를 높이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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