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다양성과 참된 민주주의 지켜내기 위한 노력 멈추지 않을 것2011 년 종합편성채널 개국 등 미디어 격변기는 한겨레신문에도 만만찮은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 파고를 어떤 비전과 전략으로 헤쳐가려는 걸까. 취임 1백일(지난달 28일)을 맞은 양상우 대표이사 사장에게 한겨레의 나아갈 길을 물었다. 공채 4기로 ‘창간 후 세대’의 첫 대표 주자가 된 그다. 젊은 사장에 대한 구성원들의 기대도 크다. 그를 지난 1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 대표이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겨레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지 1백일이 조금 지났다. 소감은.기대가 커서인지 임직원들은 1백일 된 사장이 아니라 3년 정도 된 사장으로 기대를 해주시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힘이 되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지만 제게 주어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1백일이 1백일 같지 않다.(웃음)
-업무 파악은 다 했나. 파악해보니 한겨레라는 조직은 어떻던가.취 임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은 한겨레는 어떠한 경우에도 꺾일 신문이나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점도 있고 개선해야 할 점도 분명 있긴 하다. 그러나 구성원의 헌신성과 사회적 소명에 대한 자부심은 일반 기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정신이 창간 이래 지금까지 면면히 흐르고 있고, 한겨레의 가장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창간 이후 다른 매체에 있던 분들이 진정한 언론인의 길을 걷겠다며 한겨레에 오시지, 한겨레 출신들이 보수신문으로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이다. 급여, 발행부수를 떠나 제대로 된 참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이 한겨레를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경쟁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면과제는 무엇인가.창 간 시기라면 토대를 닦고 기둥을 세우고 집을 지으면 되는데, 한겨레는 이미 사반세기 역사를 가진 신문사다. 한 가지만 꼭 집어 얘기하긴 어렵다. 다양한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내적으로는 관리 시스템의 체계화와 재구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외적으로는 미디어빅뱅, 종편 쓰나미에 대처해야 한다. 1월에는 종편 쓰나미가 수평선 바로 뒤까지 와 있다고 말했는데, 지금은 수평선을 넘어오는 게 보인다. 쓰나미가 눈에 보이면 코앞에 밀려올 때까지는 매우 짧은 시간이 걸린다. 위기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 쓰나미에 맞서 어떻게 하면 한겨레의 소명을 다하고 기업을 성장시킬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일 본 쓰나미를 봐서 알겠지만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그러나 쓰나미는 때가 되면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우리는 일본처럼 재앙이 됐던 원전도 없다. 스스로 발목을 잡을 불합리, 부도덕도 없다. 종편 쓰나미는 말하자면 개인용 식탁에 4명이 앉아 식사를 하는 격인데, 우려되는 것은 이로 인해 미디어 시장이 야만의 시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더 큰 우려는 여론 다양성이 훼손되고 참된 민주주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한 한겨레의 역할을 해나 갈 것이다. 대표이사에 취임한 후에는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시사IN 등 진보언론 사장들을 찾아뵙고 이런 언론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손을 맞잡고 헤쳐나갈 방법 등 여러 의견들을 주고받았다. 하반기에는 연대와 제휴 등이 구체화돼야 한다고 본다. 첫 시작부터 거창하지는 않겠지만 뜻깊은 발걸음을 뗄 것으로 기대한다.
-종편 쓰나미를 얘기했다. 언론계 화두가 종편의 광고 직접영업인데 어떻게 생각하나.직 접영업은 안된다고 본다. 구독료 등 독자를 기반으로 해서 미디어산업이 돌아가야 하는데 광고주나 취재원을 통해 미디어기업이 생존한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종편은 독자를 통한 영향력이 아니라 기업 등 광고주를 상대로 한 영향력으로 생존을 도모하고 있는 것 아닌가. 직접영업을 허용하면 해악이 극대화될 가능성이 있다. 독과점이 심화될 것이고 참언론은 질식당할 것이다.
미래도약 위한 기본 인프라 완벽히 갖추겠다
-어떤 지향점과 비전, 목표를 가지고 한겨레를 이끌어 갈 생각인가. 우 리 신문은 사실 태동될 때 소명의 절반 이상을 이뤘다. 한겨레는 사원, 주주, 독자들의 것만이 아니라 이 사회의 소유물이다. 한겨레가 25년 가까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성채(城砦)가 된 것은 시민과 사회의 염원이 있었고 이를 잘 받든 창간 주역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 저의 몫이다. 한겨레라는 회사로 보면 미디어빅뱅과 종편 쓰나미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한겨레의 최고 강점인 ‘신뢰’를 통해 우리 사회와 교호하고 더 튼튼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의 도약 과정에서 단단한 밑거름이 될 제도와 체제를 정비하고 싶다. 누군가 토대와 인프라를 닦아놔야 미래의 도약이 가능하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최고의 신문’ 한겨레 신문, ‘최고의 신문사’ 한겨레 신문사가 되는 데 기본적 인프라를 완벽히 갖췄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그게 이 시기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공채 4기에 40대다. 젊은 사원들의 지지를 많이 받은 것으로 안다. 연공서열에 얽매이지 않고 조직 개혁을 할 당사자라는 평도 나왔다. 잘되고 있나.인 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나. 이미 ‘연배가 높다’는 게 인사의 최우선 기준이 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경험의 힘은 탤런트의 일부다. 연공서열을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는 그런 경험을 무시하거나 감안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가 사장이 되는 순간 연공제일주의는 정서적으로 많이 약화됐다고 볼 수 있다.
-상반기 경영실적은 어떤가.올 1분기는 창사 이래 가장 유래가 없을 정도로 나빴다. 그러나 2분기 들어 약진을 거듭하며 상반기로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낼 것으로 본다. 하지만 폭풍 전야의 한국 신문업계에서 분기 혹은 반기 실적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반기 전망은 어떻게 보나.예 고된 종편의 개국 등으로 광고시장 여건은 좋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전망이 결과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전망을 극복하는 경우도 많다. 지나친 낙관이나 비관을 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겨레는 위기를 잘 극복해 내야 하고 또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04년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을 할 때 많은 구성원들이 떠났다. 다시 한겨레가 어려워지면 어떻게 하겠나.당 시는 우리가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할 위기였다. 그 당시 회사가 그분들에게 개별적으로 퇴직의 압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 일반 기업과는 판이한 모습이었다. ‘한겨레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있다’, ‘배를 가라앉힐 것이냐 침몰을 막는 자기 결단을 내릴 것이냐’라는 전체를 상대로 한 문제제기만이 반복됐다. 그렇게 사랑하는 동료들 80명이 회사를 떠났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슴 아픈 일이다. 가족같이 일하던 분들이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게 저의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선거 공약에서 상여금 6백%의 기본급 전환을 약속했다. 실현 가능한 공약이라고 보나. 현 재 임금협상이 진행 중이다. 지난해 임협에서 정한 상여가 5백%인데 올해 6백%를 지급하겠다고 임직원들에게 이미 공지했다. 그 중 1백%는 기본급화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굳이 공약할 필요가 없다. 힘을 모아야 달성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과제가 바로 공약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실현이 가능한 게 아니라 애쓰고 땀 흘려서 반드시 이뤄야 할 것이 공약이고, 공약을 했으니 저는 꼭 이뤄야 할 의무가 있다.
-세 번이나 사장 선거에 출마해 결국 40대에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왜 사장에 계속 도전했고, 또 사장이 되고 싶었나.현 재 수습기자 채용 과정 중이다. 처음 지원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러 차례 지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왜 세 번씩이나 계속 도전하느냐’고 묻지 않을 것이다. 다만 ‘왜 기자가 되고 싶으냐’고 물을 것이고, 그들은 기자가 돼서 이런 저런 사회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답할 것이다. 한겨레 사장 역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장이라는 자리보다는 사장으로서의 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해야 할 일로 느껴졌다고 할까. 소명의식을 갖고 잘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봐줬으면 한다. 저희 회사는 직선제로 사장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를 여러 사람에게 평가받는다. ‘이 일을 하고 싶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묻는 거다. 어느 선거나 낙선을 하면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들에 대한 섭섭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저는 짧은 순간은 불편했지만 하루만 지나면 나를 뽑아주지 않은 동료들의 선택이 외려 고맙더라. 나를 뽑아주지 않은 동료들을 원망했다면 다시 출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것이 세 번을 출마한 동력이다.
재임기간 단기적 호평보다는 근간 세웠다는 평가 받고 싶어-특종도 많이 하고 기자상도 많이 받았다. 기자로서의 미련은 없나. 경영진과 기자 사이에서 갈등도 있었을 것 같은데.누 가 알겠나, 사장이 끝난 후에 기자로 돌아갈지….(웃음) 한겨레에 들어와 눈물을 흘린 적이 두 번 있었다. 2004년 비경위 때 동료 80명이 나간 그날, 많이 울었다. 2008년 편집국을 떠나 출판국장으로 자리를 옮길 때도 눈물이 나더라. 그런데 그게 뭐 인생이겠지.
-실국장 회의에서 너무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간여한다는 얘기가 있다. 실국장이라면 자기 실국의 업무를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묻는 것은 실국장이 자신의 업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사장일과 국장일은 무 관 한 것이 아니라 같은 연장선에 있다. 업무에 대해 사장이 다양한 궁금증을 갖지 않은 것이 되레 이상한 것이다. 비례 관성의 법칙이 있다. 그동안 평균 이상으로 간부들에게 자유방임적이었다면 현재가 정상적인 수준일지라도 ‘많이 간섭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삼성 광고 중단된 후 재개가 됐는데 3년 전 광고 수준을 회복했나. 지 속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본다. 삼성이 한겨레를 순치시키겠다는 생각을 하던가, 삼성이 가진 사회 위상에 걸맞지 않게 일반 기업 수준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률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3년 전 수준을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의도가 없다면 나아지지 않겠나.
-삼성 관계자는 만나봤나. 뭐라고 하던가.신문사 사장이 만나는 사람을 가리겠나. 만나는 사람 가운데는 당연히 삼성 관계자들도 있다. 삼성도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더라. 그 대표적인 게 기업활동과 ‘오너체제’에 대한 ‘언론의 이해’였다. 그러나 적어도 제가 만난 이들은 한겨레 신문에 정상적 광고 집행을 해야 한다는 한겨레의 주장을 부인하지는 못했다.
-끝으로 어떤 사장으로 남고 싶은가.튼 튼하고 훌륭한 한겨레라는 집을 건축하고 싶다. 그러나 그 집을 모두 지을 수 없다면 튼튼한 토대(인프라, 시스템)를 구축했다는 말을 듣고 싶다. 재임 기간, 단기적으로 좋은 말을 듣기보다는 근간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선배 사장들 가운데도 당대의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 높은 평가받는 선배들이 있다. 그런 사장이 되고 싶다.
대담=김신용 편집국장 trustkim@journalist.or.kr
정리=민왕기 기자 wanki@journalist.or.kr
양상우 사장은…
민주화 운동 경력으로 언론고시 수차례 낙방
한겨레 입사후 수없는 특종으로 기자상 수상양상우 대표이사 사장의 삶은 ‘도전과 응전’ 그 자체였다. 1990년 한겨레(공채 4기)에 입사하기 전까지 그는 소위 ‘언론고시’에서 5번이나 낙방했다. 그것도 모두 최종 면접에서였다. 민주화운동 등 경력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이다. 한번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령장을 받으러 갔더니 ‘도저히 당신은 받을 수가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한겨레에 입사한 후 그는 24시 팀장, 기동취재팀장, 사회정책팀장, 한겨레21 사회팀장 등을 거치며 주로 사회분야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뛰었다. 수없이 특종도 했다. ‘쌍용 사과상자’ 등 사내 포상만 20여 차례를 받았고, 이달의 기자상 등도 수차례 수상했다.
정치부에도 1년 있었는데 최연소 야당 반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 정치와는 잘 맞지 않는다고 평한다. ‘사장 임기가 끝나고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손사래와 함께 “천만에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골프도 즐기지 않는다. 오직 취미가 있다면 ‘일’이라는 게 주위 사람들의 말이다.
대표이사 사장 선거에 세 차례(2005년, 2008년, 2010년) 도전해 결국 당선됐다. 회사가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했을 때도 출판미디어본부의 매출을 크게 끌어올리는 등 성과를 내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2004년 비상경영위원회 위원장때 80여 명의 동료가 희망 퇴직한 것은 그에게 여전히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는 강한 인상과 이력 때문인지 주위로부터 ‘배짱 좋고 자기 확신이 강하다’는 평을 자주 듣곤 한다. 하지만 독단적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라는 평이다. 어떤 현안이나 사안에 대해 당사자나 주변으로부터 조언이나 의견을 많이 구하는 편이다. 결단이 필요할 때는 잠도 설치고 고민도 많이 한다고 했다. “항상 절박한 상태에서 일을 하며 살아온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