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 2580-공포의 집합

제24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 부문/MBC 김재용 기자


   
 
  ▲ MBC 김재용 기자  
 
방송 직후 대학 내 구타문제에 대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비난이 쏟아졌다. 2580 사무실은 전화벨 소리로 요란해졌다. ‘도대체 학교가 어디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식의 항의가 빗발쳤다. 수화기 너머로 분노의 기운이 가득했다.

후속 보도를 준비하면서 매질을 했던 학생들을 설득 끝에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됐다. 그리곤 “죽을 죄를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간의 따가운 비판을 감당하기 너무도 어려워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을까? 이들은 하나같이 ‘평소에 잘 느끼지 못했던 폭력의 끔찍함, 그 실체를 방송이란 객관화의 도구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정도의 문제일 뿐 일종의 공격성을 품고 사는 건 아닌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고 싶고, 명령하고 싶고, 또 지배하고 싶은 근원적인 공격성 말이다. 그러나 평소엔 이걸 잘 인식하지 못하고 늘 정당화한다.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예절을 지키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휘두른 폭력이었다’라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서열구조 속에서 폭력에 대한 핑계를 찾는다. 지금도 어느 대학에선가 공포의 집합을 하고 있을 선배들이 그렇고, 술에 취해 자녀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가장이 그렇고, 또 매질을 해놓고 ‘사랑의 매였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선생님들도 그렇다.

취재 중 만난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우리 사회가 너무도 공격적인 사회’라고 표현했다. 실제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의 상당 부분이 욕이고, 운전하다가 다른 운전자가 조금만 답답하게 운전해도 욕이 튀어나오고, 하다못해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헛발질을 하거나 헛스윙을 할 때도 가끔 거친 단어가 튀어나온다.

이런 분위기 속에 ‘잘못한 사람은 좀 맞아야지’, ‘응징이 필요해’라는 도식이 우리 머릿속에 깔려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이런 공포의 감정을 위계질서, 서열구조 속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한때 피해자였다가도 서열의 상층부에 오르게 되면 얼마 전까지 느꼈던 공포심을 잊고 각종 유무형의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이 대물림되는 과정은 그래서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이제 이런 폭력의 대물림, 악순환의 구조를 깨야 할 때다.

그리고 이 작업은 어른들이 먼저 해야 한다. 인터뷰를 한사코 거부했던 용인대 김정행 총장, 그리고 원로 교수들. 또 대학에 이런 문제로 개입하기 어렵다며 매우 부담스러워했던 교육과학기술부까지…. 교육계에 남아 있는 폭력의 잔재를 깨기 위해선 적어도 이들이 먼저 앞장서야 한다.

방송에서 시범케이스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학생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폭력을 대물림해준 어른들이 크게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런 공포의 인습은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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