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갖고 튀어라-영업정지 전날 밤 VIP에 100억 몰래 빼준 부산저축은행

제248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한겨레21 하어영 기자


   
 
  ▲ 한겨레21 하어영 기자  
 
모든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영업정지 전날 VVIP와 직원 인출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금융당국과 은행으로부터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답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상황입니다만, 4월 중순만 해도 그랬습니다. 이 말은 “VVIP면 재산권을 지킬 만한 정보를 얻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무슨 잘못이냐”는 말로 나아갔습니다. 예금액, 거래기간 등 몇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우수고객에게 예약해지를 종용했다는 사실까지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확인됐습니다. 쉽지 않은 취재였지만 어렵지 않게 답하는 취재원들에게 아연실색했습니다. 주워 담을 수 없는 얘기를 자랑하듯 꺼냈던 VVIP 당사자만이 아닙니다. 은행관계자, 금융당국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금융당국이 부산저축은행에 최소 6개월 전부터 상주하고 있었던 현장에서 벌어진 아비규환이 2개월여 간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당사자들의 불공정, 비상식에 대한 공감능력 결여 때문이었습니다. 보도 뒤에도 금융당국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인출은 불법이 아니다” “법으로 규율하지 못하는 것을 기사로 작성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 더해졌습니다. 금융당국은 6개월이 넘게 부산저축은행에 파견돼 있었던 직원들을 두둔했습니다. 영업정지 전 날 불법인출의 현장에 있었던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업무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게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한겨레 21은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저축은행 청문회로도 여론이 일어서지 못한 사건이 한겨레 21의 보도로 공명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VIP인출과 금융당국의 사실상 방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함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금융사건으로 단일 최대 규모라고도 불리는 이 저축은행 사태보도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3월초 한 마디의 제보로부터 시작된 취재는 한달여의 취재기간 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기간 동안 5천만원 이상의 예금자들과 후순위 채권을 매입한 금융피해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우리한테는 은행이면 다 같은 은행 아닙니까?” 평생을 모은 돈의 사연들은 차고도 넘쳤습니다. 그들 앞에서 고수익을 누렸으니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4월24일 첫 보도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보도를 멈출 수 없었습니다. 연이어 부산이 아닌 전주에서도 동일한 사태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해 단독 보도했습니다. 6월4일 부산저축은행 핵심 관계자들이 구명을 위해 현 정권 최고 실세를 만나 로비를 벌였다는 내용의 보도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금융소비자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금융피해로 신음하는 금융소비자들이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섭니다. 보도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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