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후 '언론장악 청문회' 반드시 열어야"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



   
 
   
 
신문발전법·미디어렙 공론화 등 중소매체 지원 강화할 것


이강택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취임 후 두 달을 거의 현장에서 보냈다. 최근 발족된 ‘종편 특혜 저지와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투쟁위원회’의 대표도 맡고 있다. 인터뷰 당일도 공안검사 출신 방송통신심의위원 선임 반대 시위에 참가했던 그는 언론노조의 미래와 한국 언론의 앞날에 대해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취임 이후 돌아본 언론 현장에서 무엇을 느꼈나.
이명박 정권 3년 동안 미디어악법을 비롯해 수많은 권력의 도발이 있었다. 언론장악에 맞서 싸웠으나 뚜렷한 승리의 기억이 적다. 승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 쉽사리 회복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면 우리는 근본적으로 저력있는 집단이란 걸 느꼈다. 한발 한발 나아간다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언론계엔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 조합원들을 잘 추슬러서 어깨 걸고 나아가면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취임 뒤 첫 달은 상황 파악, 인사 다니고 진용을 꾸리는 데 집중했다. 두 번째 달은 KBS 수신료 인상안, 방송법 개정안 등 현안들이 불거졌다. 그것에 대응하다 보니 의회나 방송통신위원회 통로가 막혀 있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한 측면이 있었다. 이를 구축하고 가동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조합원을 만날 때마다 굉장히 기뻤다. 현장 조합원을 직접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게 충분치 못했다는 게 아쉽다.

-재보선 이후 정치권 지형의 변화가 감지된다. 미디어계 정세에도 변화가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재보선은 두가지 상충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하나는 언론 현업 종사자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국민들의 불만과 비판이 높아질 것이다.

반면 집권 세력은 오히려 언론을 더 옥죄고 싶은, 더 조여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언론장악 욕구가 더 강해질 것이다. 둘 사이 갈등이 불가피하다. 언론노조는 이에 대응태세를 갖추고 공간을 넓히며, 대오를 탄탄히 만드는 일에 올해 하반기 본격적으로 착수하겠다.

-언론노조는 종편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종편과 새 보도채널이 등장하면 각종 비정규직의 난립, 강도 높은 노동조건 등 내부 노동자들의 열악함도 우려된다.

그런 현상이 단기간에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종편의 골간 조직에서 빚어지진 않을 것이다. 모순이 집중되는 비정규직화는 비용 절감을 위한 아웃소싱 등 그 외곽 조직에서 야기될 것이다. 두 부분을 무차별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게 기본 생각이다. 언론노조도 초기부터 충분히 동향을 예의주의하고 필요하면 연대할 것이다. 산별노조로서 그런 노동자들은 본원적 의미에서 조직 대상이다.

-임기중 총선, 대선 등 중대한 정치적 변곡점이 있다.
언론노조가 정치집단은 아니다. 우선 직접적인 정치적 역할을 하기보다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언론이 짚어야 할 이슈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자기검열을 경계하고 권력의 입김에 왜곡되지 않아야 한다. 이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대선 국면에서 할 일이다. 또한 선거는 미디어를 통해 많은 부분이 이뤄진다. 선거방송을 권력 요구에 부응하게 만드는 끝없는 시도가 있을 것이다. 공명정대한 공정보도 감시운동을 강화할 것이다.



   
 
   
 
-재보선 때 언론노조의 특정 후보 지지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언론노조는 민주당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최문순 후보를 지지했다. 이걸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최문순 후보는 언론노조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모범적 행보를 보인 것을 평가해서 지지한 것이다. 이를 일반적·정치적 태도로 비약해서 보는 건 문제다. 우리는 그 외 지역구에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대선에서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다만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우리의 목표다. 이것에 부합하는 한 태도를 표명할 수 있다. 언론노조는 개별 사업장에서 할 수 없는 정부에 대한 요구 등 총체적 차원의 임무를 갖는다. 이것과 개별 조합원들이 언론인으로서 하는 행위는 분명히 구분된다. 이를 마치 개별 조합원들이 정치적 편향을 가진 것처럼 왜곡하는 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년 정권 교체를 반드시 이뤄 ‘언론모리배’를 응징해야 한다는 언급을 자주 한다.
이 정권은 기본적으로 반언론 정권이다. 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언론을 장악했다. 이는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 알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역사적 책무다. 정권 교체 후 ‘언론장악 청문회’는 반드시 열려야 한다. 대선 전이라도 역량이 되면 밝혀야 한다. 특히 언론장악의 종합선물세트인 KBS 정연주 사장 축출, YTN 해직사태, MBC 장악 과정 등의 진상 규명이 중요하다. 책임자는 반드시 문책 받아야 한다. 한풀이가 아니라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다. 이런 적폐를 해소 못하면 언론인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 수 없다. 앞으로 언론인들에게 이런 역사를 물려주지 말아야 한다.

-최근 언론노조 소속 조합 사이에서도 이해가 상충하는 현상이 생긴다. 지상파 재전송 문제도 한 예다.
과연 누구의 이해일까. 사실 사주나 경영진의 이해다. 특히 이해라면 우선 경제적 이해로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경제적 동물만은 아니다. 정치적,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도 크다. 우리의 이해가 왜 경제적으로만 국한돼야 하는가. 그것도 현재 왜곡된 언론지형에서 말이다. 시민 전체 이익과 더불어 해결 방법이 모색돼야 한다. 전반적 사회 차원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 개별 회사, 경제적 이익, 사주 이해를 기준으로 하면 합의점이 나올 수 없다. 언론노동자는 필요하다면 사회적 임금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방송발전기금이 어디에 쓰이나. 친정권적 관변단체 부양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이것이 제대로 취약매체나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곳에 쓰여야 한다.

지상파 재전송 문제는 복잡하기는 하다.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지상파 방송사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이해가 대립된다. 시민들의 이익 차원에서 봐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공적 기능에 더 투자해야 한다. 수신환경 개선을 케이블에 떠넘긴 책임이 있다. 그러니 콘텐츠를 팔면서 제 값도 못 받았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위성방송은 난시청 해소 보조 기능을 한다. 케이블은 그렇지 않다. 돈 되는 도시 밀집지역에만 망을 설치한다. 이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종편 특혜를 위해 일방적으로 케이블TV의 편을 들고 있다.



   
 
   
 
-지상파 방송 노조 외에 기층 노조가 점점 약화되고 있다는 것도 언론노조의 고민이다.

신문 시장 황폐화 탓이 크다. 신문의 공공적 기능을 논하기 전에 생존에 내몰리는 상황이 됐다. 방송이 신문시장을 같이 진단하고 연대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또 지역언론의 몰락에 중앙 언론은 공공성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이러면서 언론노동자 사이에도 균열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언론노조는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신문발전지원법을 준비하고 있다. 미디어렙 논의도 공론에 붙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물리적 토대를 갖추기 위해 지원할 것이다. 이런 것이 연대를 복원하는 기초다. 그 연장선상에서 언론의 공공성을 화두로 꺼낼 것이다.

이를 통해 연대성을 확인하고 내년 총선 이후 의회 권력 지형이 바뀌면 입법화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그 동력을 대선까지 이어가겠다. 대선 이후엔 시민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는, 언론노동자 독립을 이룰 수 있는 물적 토대를 굳건히 이룰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제가 항상 정권에 대한 대반격, 미디어생태계 토대 구축 등 ‘거대담론’만 이야기한다고 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도 이것이 빈말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반드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목표를 이루려면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 좀 더 넓게 보고 멀리 보자. 약속한 것에 최소한 토대를 만든 언론노조 위원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만약 희생이 필요하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90년 4월 투쟁이 나를 키웠다”
이강택 위원장, 그의 뒷이야기

이강택 위원장이 언론운동에 뛰어들 게 된 계기는 지금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수습 PD로서 ‘관제 사장’을 반대했던 1990년 KBS 4월 투쟁을 경험했다. 이 위원장은 “난공불락 같았던 관영방송의 성을 허물 수 있다는 섬광을 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4월 투쟁이 잦아들면서 한때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둘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입사 3년차 때 노조 전임자로 일하면서 새로운 세례를 받았다. KBS의 전모를 바라보면서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는 시각을 기른 시기였다.

그는 그만큼 KBS에 대한 애정이 깊다. 그래서 요즘 도마에 자주 오르는 KBS를 바라보는 심경이 더욱 복잡하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KBS의 우수한 젊은 후배들이 과거의 유산에 질식당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KBS에서 제 청춘을 보냈습니다. KBS에는 정말 훌륭한 언론인들이 많습니다. 물론 정치권력의 압력에 쉽게 관영화될 수 있는 약점이 있습니다. 동시에 자본으로부터 가장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런데 축적된 부정적 유산들 때문에 장점조차 발휘 못합니다.”

그러나 수신료 인상 문제에 대한 입장은 단호했다.
“누가 물으면 저만큼 KBS 수신료를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떳떳하게 올려야 합니다. KBS가 자기성찰을 하고 사회적 동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인상은 그 자체가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위원장은 3년 전 이병순 전 사장 때 수원연수원으로 발령났다. 보복 인사라는 목소리가 컸다. 제작 현장에서 강제로 격리된 셈이다. 그는 현장에 대한 향수가 강했다. 이 대목에서는 눈물을 보이며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얼마 전 MBC PD수첩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편을 보고 “정말 저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간절히 느꼈다고 한다.

“20년간 PD로 일한 내 표현의 자유를 빼앗은 힘은 무엇인지 생각했습니다. 그 힘에 맞서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했죠. 저 같은 PD가 다시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 일이 내가 책임져야 할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죠. 언론노조 위원장이 되면서 결과적으로는 현업을 떠난 시간이 더 길어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제작 현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대학원에서 연구한 미디어정치경제학과 오랜 노조 활동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욕이 충만하다. 2년 뒤 KBS 이강택 PD의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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