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번역 오류
제247회 이달의 기자상 경제보도부문/한겨레 정은주 기자
한겨레 정은주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5.04 12: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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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정은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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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24일 오후 7시께,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식당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 출입기자들이 송년회를 열었다. 10월에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공식 서명하고 12월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타결한 터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 쪽이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에 도전하라고 권했다는 협상 뒷얘기를 전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때 기자들은 “2010년 대외협상에 열중했던 통상교섭본부가 2011년에는 대내협상에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새해가 떠오르자 통상교섭본부가 대내협상에 소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잇따라 터져 나왔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2월21일 <프레시안>에 낸 기고문에서 “왁스류와 완구류의 ‘원산지 판정기준’이 한-EU FTA 협정문 한글본과 영문본에서 다르다”고 지적한 게 출발점이었다. 통상교섭본부는 “실무적 실수”라고 해명하고 비준동의안을 철회한 뒤 수치만 달랑 고쳐 국회에 다시 제출했다. 2월 국회에서 한-EU FTA 비준동의 절차를 끝내겠다는 욕심에 무작정 서두른 것이다.
문제는 ‘실무적 실수’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롯됐다. 이미 발효된 한-아세안 FTA와 한-인도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의 협정문에서도 번역 오류가 다수 나타났고(<한겨레>3월2일치8면) 그 오류도 1년6개월이나 방치됐으며(<한겨레>3월3일치2면) 한-미 FTA에도 엉터리 번역이 수두룩하다는 지적(<한겨레>3월4일치1면)이 잇달았다. 그리고 국회에 새로 제출한 한-EU FTA 협정문에도 번역 오류가 또 발견됐다는 기사(<한겨레>3월7일치1면)까지 나왔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는 마침내 ‘오류투성이’ FTA를 심의할 수 없다고 선언했고 통상교섭본부는 FTA 협정문 재검독과 통상협정 번역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4월4일 한-EU FTA 협정문에서 번역 오류 207개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었다. 한-EU FTA에서 여전히 오류가 나오고 재검독 중인 한-미 FTA에도 무더기 오류가 발견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번역 오류를 처음 지적했던 송기호 변호사는 “번역 상 문제가 생긴 것은 대외적으로 입 노릇 하는 통상교섭본부와 대내적으로 중요한 통상산업을 결정하는 정부부처 사이에 실질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산업 담당 부처와 국회, 이해관계자인 기업인·농민·어민과의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는 뜻”으로도 풀이했다. 대내협상보다 대외협상을, 한글본보다 영문본을 중시하는 통상교섭본부가 변하지 않는 한 번역 오류는 끊임없이 재현될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