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
제246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한국일보 남상욱 기자
한국일보 남상욱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4.06 14: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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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남상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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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을 편안하게 보내고 싶습니다.”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의연한 사람은 없다. ‘타살’의 의구심도 가질 법하다. 만삭의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을 처음 접하고 제보자를 만나며 든 생각을 솔직히 고백하면 이렇다.
‘그냥 그런 변사 사건일 것 같다. 어차피 경찰에서 수사를 할 테고, 결론을 내리면 그때 보도를 하면 되지.’ 취재가 막힐 때마다 그만한 핑계가 없었다.
기자의 안일과 불성실을 깨뜨린 건 피해자 아버지의 하소연이 아니라 의연함이었다. 한 번도 기자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진실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어느 늦은 밤, 경찰팀장(시경 캡)에게 “부검 결과가 나왔다, 타살 가능성을 확인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실마리가 풀리고 2월6일 첫 기사를 작성했다. 기자의 영혼은 후련함 대신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기실 취재를 하는 내내 수없이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남편이 범인이다”라고 자신했던 경찰은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했고, “억울하다”고 눈물을 흘리던 유족마저 같은 말로 걱정을 했다.
어쩌면 기자의 초고를 받아 본 시경 캡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캡은 기자의 취재수첩에 가득한 팩트(사실)를 믿어줬던 것 같다. 부족하고 놓친 부분을 메우고 세밀하게 연결하라고 지시했을 뿐 한 번도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첫날에도, 연일 계속된 2보, 3보, 4보에도. 덕분에 보름이 지나도록 수첩의 내용으로 지면을 채울 수 있었다.
캡 역시 이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고, 몇몇 기사는 마감이 끝난 뒤 캡이 새로 확인한 팩트를 녹여 넣느라 자정이 임박한 시점에 다시 쓰기도 했다. ‘팩트로 가득 찬 기사는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묻힐 뻔했던 진실이 세상의 햇빛을 보았습니다.” 사위의 구속이 결정된 뒤 기자에게 건넨 피해자 아버지의 말은 오히려 내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정말 묻혔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눈, 그리고 많은 기자를 통해 언젠가는 드러났을 것이다. 기자를 매개로 조금 빨리, 적당한 시기에 알려졌을 뿐이다.
사건은 진행 중이다. 법원의 판단이 남았지만 미제로 남은 유사 사건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피해자의 가족은 기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분에 넘치는 말이다.
새 생명을 가슴에 품은 채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그녀가 편히 눈감을 수 있다면, 기자가 오히려 가족과 기자를 믿어 준 고찬유 캡과 데스크 정진황 차장, 그리고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