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충현 포켓수첩 단독보도

제243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서울신문 김승훈 기자


   
 
  ▲ 서울신문 김승훈 기자  
 
지난해 11월 23일, 정치권은 두 번 요동쳤다. ‘원충연 포켓수첩’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문이다. 그날 오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 점검1팀 원충연 전 사무관의 ‘포켓수첩’이 서울신문을 통해 공개됐다. 수첩은 MB정부 내 참여정부 인사들을 걸러내기 위한 ‘살생부’나 다름없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친박’ 이혜훈 의원, 원희룡·공성진 의원 등 여권 인사 사찰 내용도 들어 있었다. 민주·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수뇌부는 물론 YTN, MBC, KBS 등 방송사 노조의 동향을 파악한 내용도 적혀 있었다.

민간인(김종익 전 NS한마음 대표)에게 맞춰졌던 초점이 정·관·재·언론계 사찰로 확대됐다.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국정조사와 특검 도입’을 거세게 요구했다. 이런 상황은 오후 2시34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급반전했다. ‘국정조사’ 목소리는 쑥 들어갔다. ‘원충연 포켓수첩’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안보 정국’으로 직행했다.

‘원충연 포켓수첩’은 지원관실의 사찰 실체를 밝히는 서막에 불과하다. 40여 명에 달하는 지원관실 직원들이 여러 인사의 사찰 내용을 원 전 사무관처럼 개인수첩에 적고, 그 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했으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실제 지원관실 직원 7명이 사용한 내·외부망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그 정황을 뒷받침할 결과물도 나왔다.

지원관실의 사찰 실체 규명은 민간인 불법 사찰을 파헤친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데서 비롯됐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김종익 전 대표) 사찰에 청와대 인사가 개입된 정황을 최초 보도했다. 정치권 안팎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BH하명’이 그것이다. 이어 청와대 인사가 개입한 더 결정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민간인 불법 사찰 결과를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보고한 정황을 기사화했다.

이러한 연속보도 이후 검찰 수사의 문제점에서 지원관실 사찰 실체 규명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지원관실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총체적으로 꿰뚫고 싶었다. ‘원충연 포켓수첩’ 보도는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첫 번째 작품이다. 정부·여당 고위 관계자들은 “정권 교체 뒤 정부 내 전(前) 정권 인사들과 반정부 성향의 인사들에 대한 사찰은 역대 정권에서도 이뤄졌는데, 왜 현 정권만 문제를 삼느냐”고 항변한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호남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경상도 인사를 때려잡고, 경상도 인사가 정권을 잡으면 호남 사람들을 숙청하고…. 이런 구태를 ‘위대한 유산’으로 계속 물려주려 하는가”라고. 이제 ‘공정사회’를 화두로 내건 청와대가 나설 때다.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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