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킨제이 보고서

제241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 한겨레21 임인택 기자


   
 
  ▲ 한겨레21 임인택 기자  
 
‘진실은 알기 어렵고, 알면 두려워진다’는 문장을 부여잡고 산다. 기획의 주제인 ‘장애인의 성’도 예외일 리 없었다. 장애인의 성(적 욕망과 권리)은 대개 부정되거나 금기시된다. 삶의 토대가 부정되거나 금기시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성적 소외의 진실은 끔찍하다. 듣고 만난 사실들을 기사에 차마 다 담지 못했다.

성이 주제가 되는 기획은 쉽지 않다고 공적서에 썼다. 은밀하여 취재가 고되고, 개인차가 심해 결과물은 보편적이기 어려우며, 소재의 특성상 진실을 가장한 선정주의에 머물 수 있다는 내외부의 우려와 지난하게 다퉈야 했다고 썼다.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감춰진 현주소부터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 까닭이다. 장애 관련 단체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여러 장애인은 자신들을 시혜 대상으로 여기는 비장애계의 차별적 시선을 경계했고, 관음의 시선을 우려했다. 설문 안이 장애인들의 성욕을 되레 자극한다며 경계하는 시선과도 자주 부딪혔다. 도움을 줄 수 없다는 단체들이 있었고, 설문에 응하지 않겠다는 개인들이 많았다. 시작하자마자 당황했고 겁먹었다. 진실은 알기 어렵고, 알면 두려워진다.

장애계의 대응은 일면 수긍된다. 설문이 노골적인 탓도 있겠다. 하지만 장애계의 노골화할 수 없고 노골화가 두렵다는 입장이 비장애의 부정과 금기로부터 어찌 구별되는지 한편 이해할 수 없던 게 사실이다. 최근의 섹스 경험(성행동)을 물었고 성생활 만족도, 성욕 지수, 연애 욕구 지수를 물었다.

기획부터 기사화까지 넉 달이 걸렸다. 설문 안을 설계하고, 공동기획을 할 수 있는 단체들을 설득하는 데만 한 달이 걸렸다. 추석 연휴 여러 날 기사를 써야했다. 딱 그만큼의 노정을 거쳐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는 만들어졌다.

성은 사랑, 결혼, 관계의 이면에 있었고, 성적 권리는 이동권, 주거권, 노동권을 이면에 뒀다. 50여 명을 만나며 실사례로 짚을 수 있었다. 장애인의 성적 고충은 비장애의 무관심이나 관심 있는 이의 차별과 깊이 맞닿아 있어 사적일 수 없다. 사회적이다.

‘장애인 킨제이 보고서’라는 호명은 물론 이런 취지와 범주의 실태조사는 국내에서 이뤄진 바 없다. 국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읽기조차 불편했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최선이라고 나는 받아들인다. 몰랐고 무관심했음을 가장 솔직하고 정확하게 수사한다. 왜 장애인의 성만 주목받아야 하는가. 이 당연한 질문조차 비장애계의 차별과 무관심을 인정하면서부터 타당한 질문이 되고 답이 구해질 것이다. 그래서 “인권 감수성을 깨우쳐주었다”는 많은 독자들의 반응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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