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도 허리굽힌 두 '왕의 남자들'

제240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부문 / 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흔히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그런 사진은 그리 많지 않다. 나도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나은 사진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자란 사진으로 상을 받게 됐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잘하라는 채찍으로 여기고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왕의 남자’로 통하는 한나라당 이재오 전 원내대표의 귀환은 이명박 대통령 후반기의 복잡한 정치관계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은평을 보궐선거 당선 직후 그의 움직임을 쫓는 것은 기자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움직임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가 선거운동 때부터 늘 혼자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국회 1진인 김병만 부장이 “아무래도 움직이지 않겠느냐”고 말을 해 정보를 좀 모아보기로 했다. 그가 실제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일요일인 전날 밤 10시쯤. 다음날 오전 일찍 여의도에 있는 서울시 당협위 조찬 자리에 온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소소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나 홀로 유세’를 벌인 이 의원이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일요일 밤, 누구도 알지 못한 그의 행보를 알아낸 건 오로지 ‘감’이었다. 지금은 차관으로 발탁된 김해진 특보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내일 일정이 있는지 물은 것이 이런 행운을 안겨주었다.

당협위에 나타난 이재오 의원은 정두언 의원과 거의 90도에 가깝게 인사를 했다. 정두언 의원이 먼저 90도로 인사를 했으며 아주 약간 주춤거리던 이재오 의원은 더 머리를 숙여버렸다. 나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한 명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장면을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두 사람 동시에 아주 짧은 순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로, 자칫 셔터찬스가 잘못 맞춰지면 같은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된다. 특히 스트로보(카메라플래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실내 광으로 이 같은 장면을 촬영, 딱딱하기 그지없는 정치 사진을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한 점이 힘이 들었다.

이 보도가 나간 뒤 정치적인 판단 때문인지 ‘90도 인사’는 이재오 의원(현 특임장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정치인들의 소소한 움직임을 다룬 사진이 1면을 차지하기란 힘든 상황에서 국민 동아 중앙 등 주요 일간지의 1면을 장식한 점 또한 의미가 있다.

정치는 다소 딱딱하고 지겹다는 선입관에서 벗어나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장면을 모두가 파안대소할 수 있는 위트 넘치는 작품으로 승화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대 특종도 좋지만 나는 앞으로도 약간은 해학적이며 인간적인 맛이 나는 이런 사진들을 찍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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