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통 국새사기 사건
제240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SBS 이한석 기자
SBS 이한석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10.27 14: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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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BS 이한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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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적 진실을 밝혀나가는 사회부 기자에게 ‘취재’는 도박입니다. 상대보다 좋은 패를 들고 있어도 심리전에서 밀리면 진실은 모함이 되고 명예훼손으로 취급받기도 합니다. 칩이 많아도 데일리뉴스의 특성상 시간싸움에서 밀리면 이길 수 없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국새의혹 취재는 그런 난관을 등에 업고 시작했습니다.
당시 행정자치부는 소중한 문화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국새문화원 건립공사를 지원하겠다고 나섰고 모 유력 방송사는 1시간 분량의 민홍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국보 민홍규 띄우기에 나섰습니다. 시장의 우상은 그렇게 완성됐습니다.
사실 ‘국새 판타지’의 사기극은 국새백서에 모두 담겨 있었습니다. 합금기술자는 이창수씨로 명기돼 있었고 전통방식이 아닌 현대방식으로 제조됐다는 내용이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발간한 ‘국새백서’를 토대로 보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보도의 역풍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백서발간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오히려 오보의 모든 책임을 취재기자가 져야 한다고 협박했고 민씨 측은 ‘민홍규 흠집내기’라며 폄훼하기도 했습니다. 국새판타지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고 이렇게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뻔했습니다.
일주일 뒤 민홍규씨의 ‘금도장 로비 의혹’ 보도가 나갔습니다. 일부는 금도장이 아닌 놋쇠도장이라고 발뺌했고 도장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확보했지만 도장을 본 적도 없고 민홍규를 알지 못한다며 전면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금도장 보도는 ‘국새파문’을 이슈화시키는 촉매제가 되면서 경찰수사로 이어지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국새 의혹 사건을 검찰로 송치하면서 “경찰은 전통방식의 제작기법은 실체가 없다. 민홍규씨의 로비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금품을 받고 민홍규 띄우기에 앞장섰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민홍규씨를 국새제작단장으로 임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정치인이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는 검증과정이 부실했음을 인정하고 관련 공무원들을 중징계했습니다.
민홍규씨의 봉이 김선달식 코미디에 정부와 정치권, 문화계, 심지어 언론계가 놀아난 셈입니다. 황우석 사태 당시 검증시스템의 부재를 비판했지만 5년 뒤 대한민국 사회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곳에 국가와 국민의 상대로 또 다른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시장의 우상이 만든 판타지와의 힘겨운 싸움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