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간강사 유서 남기고 자살
제237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부문/광주일보 김호 기자
광주일보 김호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7.07 14:4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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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일보 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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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체크를 위해 여느 때와 다름없이 광주서부경찰서를 찾은 지난 5월26일 오전. 당직 형사팀장의 책상 위에는 1장 짜리 ‘변사사건 발생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보고서의 제목은 ‘최근 교수임용에 탈락한 시간강사가 자신의 집 안방에서 연탄을 피우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보고서를 보게 된 뒤 형사팀장에게 가장 먼저 물었던 것이 유서의 분량과 내용이었다. 팀장은 기자의 질문에 “유서는 A4용지 2매 분량이며, 주로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다”고 답변했다.
이어 “언제·어느 대학에 탈락한 것이냐, 시간강사가 교수 임용에 탈락하는 일은 자주 발생하는 일인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계기가 있느냐”고 물었지만 팀장은 “특별한 사항은 없다. 시간강사들이 신변비관으로 자살하는 일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냐”고 대답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더 이상 경찰서에서는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병원 영안실에 있는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유가족 등 10여 명만 외롭게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신분을 밝히고 방문 이유와 취재목적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충격에 휩싸인 유가족은 쉽게 유서를 건네주지 않았다.
빈소에 도착한 지 2시간쯤 흐른 뒤 유가족들로부터 어렵게 유서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A4 2매라던 유서는 총 5매였으며, 특별한 내용이 없다던 유서에는 ‘이명박 대통령께’라는 말과 함께 ‘모 대학에서 6천만원, 또 다른 대학에서 1억원을 교수 채용 조건으로 제안 받은 적이 있다’는 믿기 어려운 말이 적혀 있었다. 또 ‘논문 대필’과 관련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곧장 사건캡에게 유서의 내용을 보고한 뒤 본격적인 취재에 들어갔다. 유서에서 등장한 대학이 실제로 죽은 시간강사에게 채용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 시간강사가 논문대필을 지시했다고 밝힌 교수를 직접 만나 유서의 내용을 언급하며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하지만 대학과 교수 모두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다음날인 27일 광주일보 1면에 ‘교수 되려면 1억 내라고 했다’는 제목으로 전날 발생한 시간강사의 죽음과 관련된 기사가 소개됐다. 전날까지 수사계획이 없다던 경찰은 유서 내용을 토대로 대학과 교수를 상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사건을 담당한 광주서부경찰서는 보고 누락으로 광주지방경찰청에 진상보고를 했다. 당직 형사팀장의 말처럼 평범한 시간강사의 죽음으로 기사를 썼던 타사의 기자들이 유서를 확보하기 위해 새롭게 취재를 시작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 일이 7월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경찰의 수사결과는 발표되지 않았고, 월 80만원을 받던 시간강사들의 생활이 확연히 나아진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마터면 묻힐 뻔했던 한 시간강사의 유서가 세상에 공개됨으로써 시간강사들의 처우가 조금씩 개선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