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문제유출 사건 단독보도
제233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동아 신민기 기자
동아 신민기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3.10 14: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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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 신민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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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유출 사건을 보도한 뒤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SAT 학원 설명회에서 만난 학부모였다. 격앙된 목소리의 학부모는 “기사에서 학부모들을 시험 문제유출을 독려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았다”며 “신문사 하나 정도 우스운 학부모들이니 조심하라”고 은근한 협박을 해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E어학원에서는 예고에 없던 설명회가 열렸다. 아시아와 미국의 시차를 이용해 SAT 문제지를 빼낸 강사가 전에 몸담았던 곳이다. 문제유출 사건에 대해 학원 관계자가 설명회에 나와 해명을 했다.
학원 원장의 해명이 끝나자 학부모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학부모들이 학원 관계자에게 매섭게 따질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공부를 시키려 보낸 학원에서 부정을 도왔으니 학부모로서 학원에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설명회에 참석한 30여 명의 학부모들은 “일부 학생에게만 문제유출의 이익이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SAT 문제유출 사건을 취재하면서 씁쓸한 마음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은 일그러진 한국 교육 현실의 단면이었다.
학원가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지금도 SAT 대비 학원가에서는 온갖 편법, 불법을 통한 고득점 비결이 나돌고 있다. 거액의 수강료를 챙긴 강사들은 앞 다퉈 SAT 시험문제를 유출해 왔다. 태국 방콕까지 가 문제를 빼낸 학원 강사, 경찰이 수사에 나서고 연일 언론이 문제유출 사건을 보도하는 와중에도 대담하게 시험지를 찢어 나온 강사가 줄줄이 입건되고 구속됐다. 재계약을 거부하다 학원 대표에게 납치를 당했다는 ‘1타강사’ 손모 씨도 문제유출 혐의로 경찰에 조사를 받았다. 손씨는 여기서 끝이 아닐 거라고 말했다.
SAT 문제지 유출사건이 일어난 데 대해 예일, 컬럼비아, 프린스턴, 하버드 등 미국의 주요 대학들은 SAT 성적은 여러 전형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이 점수가 입학을 결정짓는다고 믿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전했다. 유독 한국 학생들이 SAT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며 높은 SAT 점수에 비해 대학에서의 수학능력은 그렇지 못한 점을 꼬집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취재를 하며 만난 대다수의 학생은 정직하게 공부해 당당한 결과를 내겠다고 말했다. 일련의 보도를 통해 우리 교육의 곪은 상처를 드러내고 자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