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거 실적 위해 없는 죄 만드는 경찰

제231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부문 / TJB대전방송 노동현 기자


   
 
  ▲ TJB 노동현 기자  
 
40일 전 사망한 사람을 검거했다고 밝힌 경찰 보도자료는 오류투성이였다. 두 달여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것도 한 차례 조사도 벌인 적이 없는 사람을, 다른 사람의 진술만으로 혐의를 확정하고 횡령사건 피의자로 세상에 알린 것은 분명 일반적인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실수였다. 현행법상 사망한 사람은 공소권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도 없고, 설령 처벌받을 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피의자가 숨졌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만 탓할 일은 아니었다. 대전경찰이 보도자료를 배포한 지난해 10월27일, TJB대전방송을 비롯한 대전과 충남지역의 모든 방송과 신문에서 40일 전 사망한 구모씨를 횡령 피의자로 세상에 알렸다. 경찰의 부실한 보도자료를 모든 언론이 1백% 맹신했기 때문에 생긴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다만 TJB는 뒤늦게라도 40일 전 사망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조금 달랐을 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주변 동료기자나 선후배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환경단체와 유가족들이 오보 때문에 고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지역 언론사들을 상대로 언론중재를 요청했다. 이런 상황에서 TJB가 나서 정정보도에 가까운, 피해자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 언론계 동료로서 섭섭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 보도가 기자 개인의 명예나 회사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으며, 경찰의 잘못된 관행을 꼬집어, 다시는 선의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뉴욕타임스가 세계에서 정정보도를 가장 많이 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언론 스스로 잘못과 불합리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우리 언론계에서는 여전히 정정보도 자체가 기자 자신에겐 수치요, 회사 전체로는 금기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언론 스스로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인데,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신문인 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보도 이후 대전경찰은 보도자료 배포 과정이 눈에 띄게 신중해졌다. 혐의사실이 일부만 공개되고, 피의자 신원도 철저히 보호하고 있다. 인권보호 측면에선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아무쪼록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 내부에서 신중하게 수사하고, 또 수사한 결과를 공포하는 데 있어서 철저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있는 그대로 발표하는 ‘좋은’ 관행이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든든한 힘이 돼주는 회사 동료 선후배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수상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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