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애국가를 불렀다
제230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방송부문 / 부산MBC 남휘력 기자
부산MBC 남휘력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12.09 14:57:58
| |
 |
|
| |
| |
▲ 부산MBC 남휘력 기자 |
|
| |
처음 만들어보는 70분 분량의 보도 다큐멘터리.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는 막막함으로 ‘부마민주항쟁’이라는 주제만 잡은 취재는 출발부터 뒤뚱거렸다. 게다가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 사회에서 첨예하게 표출되고 있던 ‘좌우 이념대립’ 문제를 어떻게 풀어 볼 수는 없을까 하는 동떨어진 고민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정국 속에 진보와 보수 두 진영의 극단적인 모습을 지켜보며 느낀 답답함이 너무 컸기에 ‘기사’를 통해 해결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까운 제작기간을 이렇게 무작정 흘려보내고 있던 중 문득 아전인수와도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부마항쟁의 재조명을 통해 이념으로 갈라진 대결구도를 극복해 볼 수는 없을까.’
미국정부의 기밀문서를 확보하려 나선 것은 이 때문이었다. 30년 전 부마항쟁 당시 일정 정도 제3자 입장에 있었다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시각이 어쩌면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치기로 시작한 취재가 험난한 길임을 깨닫는 것은 그로부터 채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미국 현지의 관련 연구자나 기관들과의 접촉에 나섰지만 “제작 기간을 맞출 수 없어 안타깝다”는 답변뿐이었다. 몇 주 후 지인의 소개로 ‘국사편찬위원회’를 찾았을 때는 사실상 희망을 접은 상태였다. 어떤 식으로든 프로그램은 만들어야 했기에 다른 내용이라도 채워야 했던 것이다.
영한사전을 옆에 끼고 한 달 남짓 문서더미와 씨름하던 어느 날, ‘PUSAN’이라는 문서목록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더구나 분명히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시기의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목록에 해당하는 문서는 거기에 없었다. 별다른 기대 없이 자료 확보를 부탁한 뒤 이젠 보도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을 즈음 한 통의 전자우편을 받았다. 수 백 장의 문서를 일일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기밀문서철이었다.
이번 보도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이런 도움에 힘입은 결과다. 문서의 의미와 전후 맥락을 이해시켜준 한국국방연구원 박원곤 박사에 대한 감사도 빼놓을 수 없다.
더불어 첫 장편(?) 원고를 써보는 기자에게 ‘보도 다큐멘터리’의 역할과 방향을 일러준 선배, 소소한 것들까지 챙겨준 후배, 특히 빛바랜 동영상 자료를 HD방송에 맞도록 복원해 기획의도를 배가시킨 김홍식 기자와 NLE편집 박성준의 수고가 있었기에 부마항쟁을 통해 ‘톨레랑스’의 의미, 서로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찾고 싶었던 기자의 바람을 미흡하나마 담아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