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행정관 통신3사 기금 압박

제230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한겨레 이문영 기자


   
 
  ▲ 한겨레 이문영 기자  
 
역시 그랬다. 권력의 사건 처리 방식은 이번에도 ‘꼬리 자르기’ 의혹이 짙었다. 책임자들은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고 손발이 돼 움직인 실무자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는 방식. 사건이 주는 충격보다 국민들을 더 허탈하게 만드는 ‘권력의 자기방어 시스템’이다.  

지난 9월 중순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 과장 출신인 청와대 행정관이 통신 3사 관계자를 청와대로 불러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코디마)에 거액의 기금을 출연토록 압박했다는 정황을 접했다. 코디마는 현 정부의 ‘IPTV 올인’ 정책을 위해 방통위가 지식경제부와의 권한다툼 끝에 발족시킨 민간단체이고, 코디마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선거 캠프에서 방송전략실장을 지냈던 김인규씨다. 특정 단체를 위해 최고 권력기관인 청와대가 나선 게 사실이라면 한 행정관의 ‘부적절한 처신’을 훨씬 넘어서는 정권 차원의 개입이었다.

통신사와 방송계를 중심으로 취재에 들어갔고 국회에선 전병헌 민주당 의원이 같은 정황을 접하고 사실 확인에 나섰다. 전 의원 확인 내용과 취재 사실 및 관련자 해명을 취합하니 앞뒤 그림이 그려졌다. 때마침 국정감사 기간이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국정감사 당일(10월7일) 조간으로 기사를 내보냈고, 전 의원은 국감에서 내용을 폭로했다. 해당 사안은 올해 국감 최대 이슈 중 하나로 부각되며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진짜 문제는 다음이었다. 내용이 공개된 뒤 청와대의 석연치 않은 대응방식이 비판의 입길에 올랐다. 오전 브리핑에서 “해당 행정관이 기금을 독려했다”던 청와대는 오후 브리핑에선 “기금 조성과 무관한 모임이었다”며 말을 바꿨다. 청와대는 ‘협회 관계자가 모임에 참석해 기금 조성이 빨리 돼야 한다’고 독촉했다고 밝혔으나 당시 김인규 회장(현 KBS 사장)은 “통신사에 기금을 요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해당 모임에 협회 관계자와 통신 2개사만 참석했다고 말했으나 협회 관계자는 참석하지 않았고, 통신 3사 모두가 참석했다는 정황도 제기됐다. 김 회장은 “청와대 수석이 설명했으므로 확인해주고 싶지 않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고, 청와대는 “정리해 주겠다”던 출입기록을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최고 권력기관의 부적절한 행위도 문제지만, 명쾌하지 못한 뒤처리 방식은 더욱 씁쓸하다. 감추고 덮기 급급한 권력의 속성만 재확인시켰을 뿐이다. 결국 남는 것은 씁쓸함을 해소하지 못한 나의 부족한 취재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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