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비밀문서-IMF와 '트로이 목마'
제22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부문 / KBS 금철영 기자
KBS 금철영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11.25 16:24:15
외환위기 당시 IMF 합의에 따라 구체화됐던 제도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온 것일까? 외환위기 10년째를 앞둔 지난 2006년, 취재진이 관련 기획을 준비하며 던진 질문이었다. ‘국가주도형 시장 경제체제’에서 ‘완전 개방형 경제체제’로의 대전환은 10여년간 한국사회 구조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판단을 하게 됐고, 그 질문은 자연스레 IMF는 당시 어떤 방향으로 한국사회가 변화하길 원했으며, 또 IMF의 실질적 대주주인 미국은 과연 무슨 생각을 갖고 있었는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다.
이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시도로 지난 3년간 미국정부를 상대로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를 전후해 미 주요 부처들이 생산한 한국관련 기밀문서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 작업을 벌여왔고, 그 결과 미 재무부와 국무부, CIA 등 주요부서들이 생산한 1급 비밀을 포함해 약 천 쪽 분량의 미공개 기밀문서를 입수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통상 미국 정부가 비밀문서를 해제하는 데는 20〜30년의 기간이 걸리고 공개된 문서도 예민한 부분은 삭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군데군데 지워진 부분이 있긴 해도 이번에 공개된 비밀문서들은 비교적 따끈따끈한 문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문서를 입수해도 이를 철저히 분석해서 의미 있는 부분을 추려내는 일이란 여간 힘든 과정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경제 관련 전문용어가 많아 기본적인 해독에 어려움이 있었던 데다가 당시 상황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면서 추적해 들어가는 작업이란 고통을 수반하는 작업이 아닐 수 없었다. 필자는 이번 취재 덕분에 생전 인연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경제학 관련 서적들을 많은 시련을 겪으며 독파하는 또 다른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관련 비밀문서들은 2008년 가을에 대부분 취합됐지만 그동안 이를 분석하고 의미 있는 내용들을 추려내면서 관련자의 증언을 토대로 팩트들을 확인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초 IMF 외환위기 10년째인 2007년 방송을 목표로 했던 것이 2년이나 늦어진 것은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었고, 또 지난해 몰아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새로운 상황들에 대한 취재도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던 과거 사건의 이면에는 반드시 현재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만한 새로운 교훈이 있다는 믿음은 KBS탐사보도팀의 발굴보도를 가능케 하는 진정한 힘이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금융허브 모델 국가로 평가받던 아일랜드를 취재한 것이나 위니아만도 노동자 해고사태 등을 취재한 것도 과거 사건의 교훈을 현재에 되새겨 보자는 취지 때문이었다. 돌이켜 보면 무척이나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그 노력의 결실로 이달의 기자상 수상의 영광도 누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수상의 기쁨을 누리게 된 기자들 외에도 이번 취재의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에는 많은 사람들의 땀이 배어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특히 이번 취재 보도의 내용 속에는 IMF구조 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의 결과로 양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애환도 담겨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동참했던 나의 동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KBS의 비정규직 직원임을 밝혀둔다. 그들은 이번 프로그램의 진정한 주역들이다. 부끄러운 심정으로 그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