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건강 담보 잡은 교육계

제229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취재보도부문 / 경인일보 송수은 기자


   
 
   
 
지난 3월 초 우연히 식당 옆 테이블에서 학부모와 아이 사이에 오간 “물백묵 칠판이 분필가루는 안 날려서 좋은데 잘 안 보인다”는 내용의 대화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렇게 취재는 시작됐다.

다음날 도내 초·중·고교 가운데 물백묵 칠판을 사용하는 학교 명단을 뽑아 취재에 돌입했다.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니 아이의 말대로 칠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눈 비침 현상이 취재 중에 목격됐다. 곧이어 해당 제품이 한국표준협회 산업 표준 심의 기준 광택도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런 호기심으로 첫 기사가 게재될 수 있었다.

이후 속보에 대한 고민이 이어지던 시점에 또 다른 얘깃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초교 교사들로 보이는 한 술자리 모임에서 “물백묵 칠판 대부분이 불량인데도 교장들이 서로 짜고 물건을 산다”는 내용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며 궁금증이 생겨나 그들 모임에 합류,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이 학교시설평준화사업의 일환으로 노후 칠판 교체 비용으로 1백억원이 넘는 돈을 31개 시·군 교육청에 전달한 사실을 알 수 있었고, 수원 시내 30개 초교 중 20여 곳은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훨씬 비싼데도 빛 반사가 심한 J업체의 물백묵 칠판만을 구입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달청의 모호한 광택도 기준과 부족한 홈페이지 관리, 학교장들 간의 악습 등도 기사화됐다. 칠판업체들은 “영세 기업을 왜 자꾸 죽이려고 하느냐”는 불만을 토로했지만 조달청과 기술표준원, 교육청 등은 문제를 삼지 않았으며 오히려 문제가 된 부분을 개선했다. 특히 기술표준원 등에서는 조달청, 칠판업체 관계자들을 모두 소집시켜 수차례에 걸친 광택도 개선 회의를 통해 광택도 기준을 국제표준에 맞추기도 했다.

경찰에서는 의혹 업체에 대한 수사를 시작해 교장 및 행정실장, 칠판업체, 브로커, 조달청 공무원 등 모두 48명을 무더기 적발했다. 여전히 상당수의 학교장 횡포는 들려오고 있으나, 이번 결과로 다소 위축돼 있다는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좋은 환경에서 성장해야 할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의 검은 세상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아쉽기만 하다.

기자상 수상 발표로 축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이번 기자상은 생애 처음인 데다가, 단독보도로 이뤄졌다. 각 업계의 파급효과도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사회부원 모두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게 고마웠으며, 곧 입사하게 될 후배들에게 술자리에서 3년차 선배가 들려줄 후일담이 생겨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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