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관 후보 스폰서 의혹
제227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 한겨레 송경화 기자
한겨레 송경화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9.23 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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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경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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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제보 하나 없었습니다. 솔직히 앞이 깜깜했습니다. 어떻게 검증해야 할까 고민하던 한겨레 법조팀은 2백50여쪽에 달하는 인사청문회 요청자료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것밖에 시작할 게 없었습니다.
하나 둘 이상한 점이 포착되기 시작했습니다. ‘28억여원짜리 아파트의 구입자금 가운데 23억여원이 차용금이라니….’ 그 규모 자체가 의심을 품게 만들었습니다. 관련 서류를 분석하던 중 ‘어?’ 하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천성관 전 후보자에게 아파트 구입자금 8억원을 빌려줬다는 박아무개씨가 천 전 후보자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10여년 전부터 알게 된 사업가 지인”이라는 천 전 후보자 쪽의 해명은 더 큰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아파트 등기 서류와 아파트 구입자금 마련을 위한 은행대출 서류를 검토했고, 아파트 소유권 이전 등기가 끝난 두 달여 뒤에야 천 전 후보자가 7억5천만원을 대출받은 사실을 찾아냈습니다. “은행 대출 전 출처를 알 수 없는 7억5천만원이 어디서 왔느냐”는 의혹 제기에 결국 “박 씨로부터 8억이 아니라 15억5천만원을 빌렸다”는 시인을 받아냈습니다. ‘15억여원을 매우 낮은 이자로 빌려준 사업가 지인’의 단독보도로 박 씨가 천 후보자의 이른바 ‘스폰서’가 아니냐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고 이는 이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집중적으로 거론됐습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습니다. 인사청문회 요청자료에 따르면 천 전 후보자의 부인은 지난 6월 남편이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다음날부터 리스를 승계 받아 6천만원 상당의 고급 승용차를 월 1백70만원을 내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천 전 후보자의 수입에 비춰 이는 ‘상식 밖’이었습니다. 인사청문회 증빙자료에서 발견한 한 업체명을 단초로 관련 서류들을 떼어봤고, 이 차량이 원래 천 후보자의 동생이 등기이사로 근무한 적 있는 한 건설업체 소유였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리스 승계 이전에도 천 전 후보자 쪽이 이 차량을 사용해왔다는 증거를 포착해야 했습니다. 바로 떠오르는 건 아파트 주차관리대장이었습니다. 천 전 후보자의 아파트에 찾아갔고, 아니나 다를까 이 주차관리대장에는 해당 차량이 지난해부터 등록된 것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지인 아들이 이용하던 차인데, 천 전 후보자 아파트의 주차장을 자주 이용해 등록한 것”이라는 검찰의 궁색한 해명을 들은 한겨레 법조팀은 인사청문회 날을 기다렸습니다. 천 전 후보자는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고 결국 낙마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어디서 제보를 받았냐”는 질문이 많았습니다.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취재의 시작은 모두 한 마디로 ‘풀 된 자료’였기 때문입니다. “청문회 자료에 다 나와 있다”는 말이 참 ‘없어 보였’지만 그게 사실이었습니다. 공개된 자료의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살핀 끈기와 집념이 이번 기사를 만들었다고 자평합니다. 참 ‘없어’ 보이지만 이것이 당시 한겨레에만 ‘있었던’ 큰 힘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