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보령 암마을의 비밀'
제225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부문 / SBS 박세용 기자
SBS 박세용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8.05 14:39:28
| |
 |
|
| |
| |
▲ SBS 박세용 기자 |
|
| |
이번 기획은 ‘카더라’ 통신에서 시작됐습니다. 충남 보령에 바닷가마을이 하나 있는데 ‘어르신들이 암으로 줄줄이 돌아가신다 카더라’는 겁니다. 한국 사람이 암으로 죽는 게 특별한 일도 아니고 소문만 무성한지라 제작에 들어갈지, 접을지 긴가민가했습니다. 보령시도 모르고 보건소도 모르는 괴담 같은 얘기. 아이템이 죽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소문이 사실인지 최대한 빨리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28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인데도 조사하는 데만 사흘이 걸렸습니다. 암 종류에 따라 발병률을 계산했더니, 한국인 평균의 3배에서 5배까지 나왔습니다. 원인을 찾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의학전문기자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주민들은 일단 마을 곁에 있는 공군 사격장과 앞바다에 쌓여 썩어가는 탄피, 그리고 지하수를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단서는 마을의 ‘암 지도’에서 나왔습니다. 암에 걸린 집을 마을 지도에 표시하니 하나의 ‘선’이 생겼고, 그 선은 부대의 펜스와 맞닿아 있던 것입니다. 펜스 너머에는 수십 년 전부터 주한미군, 육군, 공군의 수송부가 주둔해왔습니다. 수송부에서 쓰는 유류가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주민들은 과거 지하수에서 기름 냄새가 심하게 났고 지금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군이 폐유를 무단 방류하는 걸 봤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취재팀은 즉시 지하수를 검사했고, 방송 하루 전날 발암물질을 검출해냈습니다.
방송은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보령시청은 숨겼던 지하수 검사 결과를 뒤늦게 공개했습니다. 역시 발암물질이 검출됐습니다. 시청은 홈페이지에 주민들에 대한 사과문도 올렸습니다. 또 암이 왜 생겼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시 예산을 들여 기초 역학조사도 시작했습니다. 사연에 대한 취재파일은 포털사이트에서 하루 만에 조회 수 25만 건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7월 말에는 환경 전문 변호사가 보령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주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면, 군부대 환경오염으로 인한 암 발병에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국내 첫 소송이 될 전망입니다. 저희는 이런 내용을 추가 취재해 지난달 29일 SBS 뉴스추적 <사선에 선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직장암 수술을 했는데도 암이 뇌까지 번져버린 최영재씨. 몸이 점점 안 좋아져서 마비된 오른손은 퉁퉁 부었고 말씀도 잘 못하시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암으로 위를 모두 잘라버리는 바람에 상추쌈 3번이면 식사 끝이라는 김난자 할머니. 후유증 없이 건강해보여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암으로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함성희, 최계숙 어머님. 혼자 적적하게 사시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암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마을의 불행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취재팀을 아들처럼 반가이 맞아주신 주민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