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큐 '1백년의 참회록'

제224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 / KBS순천 정길훈 기자


   
 
  ▲ KBS순천 정길훈 기자  
 
올봄 천형의 땅으로 불린 전남 고흥 소록도에도 육지와 연결하는 다리가 놓였다. 소록대교는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한센인과의 마음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상징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소록대교에는 차도만 있을 뿐 인도가 없어서 한센인들이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는 다리를 건널 수 없었고 소록대교 자체도 소록도의 허리를 관통하도록 설계돼 병원 관계자들마저 ‘폭력적인 다리’라고 불렀다. 소록도에 놓인 다리에 한센인을 위한 배려는 없었던 셈이다.

소록대교의 문제점을 어떻게 보도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소록도에서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었다. 소록도에 사는 한센인 가운데 90년대에 단종(정관절제)수술을 받은 이가 있다는 얘기였다. 먼 옛날의 일로만 알았던 한센인의 단종수술이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진 뒤로도 계속됐다는 사실에 취재팀은 한센인에 관한 얘기를 보도특집으로 다뤄보기로 결심했다.

프로그램에 소개할 만한 한센인의 사례를 모으던 중 법무법인 공감의 한 인턴으로부터 80대 한센인 남매인 최남순·남용씨의 기막힌 사연을 접했다. 젊어서 한센병에 걸린 남매는 한국과 일본의 수용시설에 따로따로 수용됐고 지난 40여년동안 만나지 못했다는 거다. 취재팀은 건강이 나빠 거동이 불편한 이들 남매에게 서로의 인사말을 카메라에 담아서 영상으로 들려줬고 그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일제시대와 광복 이후 정부의 한센인 강제격리 정책이 한센인과 그 가족의 운명을 얼마나 뒤틀어 놓았는지 고발했다.

취재팀은 1992년에 단종수술을 한 소록도 원생 송문종씨의 사연을 소록도병원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혀냈고 소록도 84인 학살 사건과 오마도 간척지 사건 등 일제시대뿐만 아니라 광복 이후 우리 정부가 행한 인권침해의 역사에 대해서도 꼼꼼히 정리했다. 또 일본과 대만의 한센인 요양시설에 대한 현지 취재를 통해 한국과 일본, 대만 아시아 3국 한센인들의 차별과 소외의 역사, 또 그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에 대한 각국의 온도차도 생생히 드러냈다.

특히 일본과 대만 정부는 한센인들에 대한 인권침해의 역사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수반이 직접 사과했지만 우리는 그동안 정부 차원의 사과 한 번 없다는 사실을 부각시켰고 한센인 처녀와 비한센인 총각이 결혼에 이른 대만의 한 노부부 결혼 이야기 등을 통해 한센인을 바라보는 극명한 시각차도 전했다.

지난 4월23일 프로그램이 방송된 지 20여일 후 한승수 국무총리가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소록도병원을 방문해 과거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 한센인들에게 사과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정부의 사과를 계기로 한센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차별과 소외가 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소록도에는 현재 6백60여 명의 한센인이 살고 있고 노환으로 평균 일주일에 한 명꼴로 숨지고 있다. 일제시절 일본 정부에 의한 강제격리 정책에 대해서는 보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정작 광복 이후 우리 정부가 행한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보상을 받지도 못한 채 한 많은 삶을 마감하고 있다.

지난 2007년 한센인 보상법이 제정됐지만 실효성이 없어서 다시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더 많은 한센인이 실질적인 혜택을 입도록 하루빨리 관련 법이 개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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