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에 휩싸인 철거민
221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부문/CBS 한재호 기자
CBS 한재호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4.08 15:4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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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한재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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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헐레벌떡 다시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불과 두 시간 전까지 조용했던 용산 한강로 남일당 빌딩 일대는 수많은 경찰과 차량들, 사이렌 소리, 경광등 불빛들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철거민들의 점거농성에 대한 경찰의 유례없이 신속한 진압작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날 철거민들이 건물을 점거한 직후 현장에 모인 기자들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오산이나 상도동을 떠올리며 경찰이 쉽게 진압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자들은 해가 저물기도 전에 현장을 떠났고 실제로 자정이 넘도록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사무실에 들러 장비를 챙기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경찰 병력들과 다가오는 거대한 크레인을 향해 철거민들은 이따금 화염병을 던져댔지만 사방에서 뿌려지는 물대포에 우왕좌왕 당황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경찰특공대를 태운 컨테이너가 크레인에 매달려 진입을 준비할 무렵 카메라 파인더 안으로 화염병을 든 검은 복면의 철거민이 들어왔고 순간적으로 셔터를 누르는 찰나, 그의 온 몸이 불길에 휩싸였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은 화염병이 터지면서 불씨가 그를 덮친 것이었다.
그는 시야 너머로 쓰러졌고 마치 신호탄처럼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순조롭게 보였던 진압작전은 철거민이 설치한 망루에 불이 붙으면서 말 그대로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그렇게 미친 듯이 타오르던 불길은 결국 여섯 명의 희생자를 낳고서야 잦아들었고 24시간 동안의 취재도 끝이 났다.
그리고 현장에서 송고한 ‘불길에 휩싸인 철거민’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번 ‘용산 참사’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과분하게도 이번 수상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혹자들은 사진 속 철거민의 생사에 대해 물어오기도 하고 그가 화염병을 들었다는 이유로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그 사진이 그곳에서 타오른 불길에 여섯 명의 죽음이 있었다는 사실로 사람들의 기억에 박혀 잊혀지지 않게 하는 매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잊혀지지 않는다면 반복되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