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수의 '진범조작' 사건 진실 추적

21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부문/동아 이명건 기자


   
 
  ▲ 동아 이명건 기자  
 
8년 전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칠 당시 동아일보 법조팀은 외로웠다. 다른 어떤 언론도 이 사건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팀은 꿋꿋이 사실 관계를 하나하나 검증했고, 그 결과를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2000년 말 한 노인이 동아일보 법조팀을 찾아왔다. 1972년 9월 강원 춘천시 초등학생 강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15년을 복역하고 모범수로 출옥한 정원섭(74) 씨였다. 그는 “고문과 협박 때문에 허위 자백을 해 무기수가 됐지만, 죽기 전에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유죄의 증거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판단해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에 나섰다.

취재팀은 변호인단과 함께 3개월 동안 1천장이 넘는 사건 기록과 빛바랜 1, 2, 3심 판결문을 꼼꼼히 읽고 분석했다. 그리고 강원 춘천과 홍천, 충남 천안, 경남 진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정 씨를 수사한 경찰관들과 정 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증인들, 검찰 관계자, 재판부, 부검의 등을 일일이 만났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경찰이 잠을 안 재우는 고문과 협박을 해 어쩔 수 없이 거짓 증언을 했다”고 털어놨다. 수사경찰관 및 검찰 관계자들은 대부분 고문과 협박을 부인했지만, 일부 경찰관은 “정 씨가 없는 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사실상 시인했다.

취재팀은 이를 2001년 3월부터 10월까지 동아일보 1면과 사회면 등에 9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정 씨와 변호인단은 취재 기록을 서울고법의 재심청구 사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재심 사유의 형식상 문제를 들어 기각했다. 그러나 정 씨와 취재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 씨는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고, 취재팀은 취재 자료를 위원회에 제출했다.

위원회의 재심 권고를 받은 춘천지법은 올 7월 재심 결정을 했고, 11월28일 무죄를 선고했다. 정 씨는 무죄 선고 직후 “무고함을 끝까지 믿어준 동아일보와 취재팀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 사건 취재로 검경 등 수사기관의 적법한 수사절차와 ‘수사 결과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법원의 자세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권력에 의해 억울한 피해를 보고도 호소할 길 없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확인하려는 언론의 노력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깨닫게 됐다.  

8년 동안 취재팀의 신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취재팀을 이끌었던 이수형 법조팀장은 퇴직해 한 기업의 법무팀에서 임원으로 근무 중이고, 신석호 이정은 기자는 각각 정치부와 국제부로 옮겼다. 이명건 기자는 정치부를 거쳐 법조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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