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60년 특별기획 '잃어버린 기억''

218회 이달의 기자상 지역기획보도 방송부문/KBS순천 지창환 기자


   
 
  ▲ KBS순천 지창환 기자  
 
우선은 ‘사건 60년’이라는 묘한 시기적 상징성이 기자를 압박했다. 거기에 여순사건은 대다수 언론매체의 관심 밖이라는 사실이 또 다른 책임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보도의 백미는 단연 진압군들이 민간인들을 즉결처분했고 그것이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당시 빨치산 토벌에 참여했던 진압군 중대장은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분이 남발되고 있었고 상부에 이의 남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항의했지만 헛수고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 노병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도 이에 대한 진상 규명과 국가 차원의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잊지 않았다. 당시 진압군 출신 인사의 잇따른 인터뷰 거절에 한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취재팀에는 지루한 장마 끝에 나타난 햇살과도 같은 증언이었다.

이번 다큐에서는 또 많은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정리해도 좋겠다고 할 만큼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발굴됐다. 당시 반란에 합세한 뒤 죽음을 피해 일본으로 밀항한 학생을 찾아가 학생들이 대규모로 14연대 병사들을 환영하거나 합세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당시 학적부 기록 등을 분석해 학교별 학생들의 가담 실태를 추적했기 때문이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만났다. 그리고 수 개월 동안 그들의 육성과 영상을 채록했다. 몇 날 며칠, 날을 새우는 편집과 거듭된 재편집 작업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기자의 사명감과 작가정신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발품도 발품이지만 관련된 연구논문과 수십여 권의 단행본 독파, 그리고 김승옥의 소설전집까지 통째로 사들여 밤을 새운 열정은 이미 책보다는 마이크에 익숙한 방송기자에겐 멋진 추억으로 남았다. 그랬기에 방송이 나간 뒤 전국에서 “60분간 TV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눈물이 솟구쳤다. 우리 역사를 다시 보게 됐다. 고생 많았다”는 유족들과 시청자들의 격려가 잇따랐다.

이번 보도는 묻혀버릴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특종이 목적이 아니었고 활자보다는 영상이 더 어필하는 시대에 여순사건에 대한 영상기록을 정리해보자는 기획의도가 강했던 만큼 각종 증언채록과 광복 전후의 시대공간을 재현한 다양한 영상기록이 제대로 보관되고 활용되길 기대한다. 끝으로 취재를 함께해 준 김종윤 선배와 유지향 기자, 그리고 이번 보도를 위해 사상 최악의 혹서를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메워준 순천방송국 선후배 동료기자와 끝까지 마음으로 지지해준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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