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대 총수 돈 관리 대기업 직원, 몰래 사채로 운용

제217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부문 / 동아일보 정치부 조수진 기자

8월 초였다. 10여 년 전 사건기자 때 만난 한 지인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경찰에서 대기업과 조직폭력이 연계된 사건을 수사하는가 보더라구.”



   
   
여러 사람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툭 내뱉은 것이었지만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술집에서 벌어지는 별것 아닌 실랑이가 재벌 총수의 보복 폭행일 수도 있는 것이 사건 기사의 특성이 아닌가.

그 뒤부터 아주 가끔 사건기자 시절 옛 취재원을 접촉할 때면 “조직폭력과 연계된 대기업 수사는 어떻게 돼가나요?”라고 묻곤 했다. 그냥 넘어가자니 찜찜했고, 사건팀에 토스를 하자니 얼개는 알아야 했다.

하지만 진척은 쉽지 않았다. 정치부 소속 외교부 출입기자가 사건기자 시절 지인들을 만날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고, 만난다 하더라도 질문의 수준이 ‘서울의 김 서방 찾기’식을 벗어날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추석연휴를 앞두고 안부인사차 접촉한 한 정치권 인사는 “요즘 C 기업 이모 회장한테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혹시 들어봤어?”라고 했다. 기업체 이름을 모르던 내게는 가슴이 쿵쿵 뛰는 일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인 9월 20일. 토요일 아침 8시 경찰에 있는 한 지인의 목소리는 흥분돼 있었다. “얼마 전 C 기업에 대해 물어본 것 있지? 야, 정말 그런 사건이 있더라. 회장 자금을 관리하던 직원이 사채로 자금을 운용하다 떼이게 되자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살해 청부를 하려 했다나봐. 서울경찰청에서 한데.”

9월 23일 출입처인 외교부 근처인 서울경찰청에 커피를 마시러 간 것을 끝으로 그 간의 상황을 사회부 사건팀장인 김기현 시경캡에게 토스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혹시 엠바고가 걸리지는 않았나요?” 오지랖 넓은 선배를 타박할 법도 하건만 김 캡은 C 기업 회장의 측근이 관리하던 자금의 규모 등 세부적인 사안을 꼼꼼히 점검하고 확인해서 이를 9월 24일 자에 단독기사로 작성해 실었다.

기자 생활 만 12년 중 3분의 1인 꼬박 만 4년간 사건기자였다. 출장가방을 준비해놓고 살인, 방화, 무장공비 침투, 수해, 여객기 추락사고 등 사건사고를 쫓아다녔다. 길거리나 ‘뻗치기’ 대상자의 집 앞에서 신문지를 펴놓고 자장면을 시켜먹고, 경찰서 숙직실에서 출퇴근을 했다. 고단했지만 그때 그 시절은 지금도 값진 기자로서의 내 삶의 밑천이다.

다시 한 번 선배의 토스를 멋진 단독기사로 승화시켜준 김기현 시경캡에게 감사드린다. ‘막내기자’격인 사건기자들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이끌어주는 데 대해서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제217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 부문 수상자
동아일보 조수진 기자(사진)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