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자들 대중심리에 복무할 것인가
박경철 안동 신세계병원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8.06 14:4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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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철 안동 신세계병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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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경제를 다루는 언론사 기자들은 프랑스의 의학자인 구스타프 르봉이 1895년에 쓴 ‘대중심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어떤 조건에서 집합된 특정한 사람의 무리는 무리를 구성하는 개인의 특성과는 전혀 다른 감정적 특성을 나타낸다. 집단화된 군중은 각각의 감정과 사고를 지워버리고, 단순하고 동일한 방향으로 모아서 행동하며, 개인의 의식과 특성들은 대중에 의해 소멸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중의 군집효과는 주로 경제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달되지만 경제의 특성상 정보의 불균형성은 오히려 더 많은 정보에 대한 갈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로 소통하는 전파 경로는 인터넷의 발달로 매우 다양해졌다. 언론으로 통칭되는 정보의 공식전달 창구와 개인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한 직접 전달 방식, 인터넷 게시판 등을 이용한 대중간의 수평전달 방식, 그리고 소위 입소문으로 불리는 말의 전달 등이다. 이렇게 대중심리 바이러스의 감염경로가 다양해지면 방역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전달방식과 속도의 증가는 가끔 대중의 과잉 반응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의 사스 공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를 만들어냈다. 사스로 인해 여행객과 세계 교역량이 10분의 1로 줄어들면서 세계경제가 공황에 빠질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걱정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고, 각국 중앙정부는 수백만명분의 항바이러스 제제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전국의 의사들에게는 사스 발생 때의 행동요령과 치료지침이 전달되었고, 국방부 산하의 야전병원이 사스 전용병원으로 지정되는 호들갑까지 떨었다.
이렇게 언론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희망을 담은 바이러스는 강한 면역에 속속 무릎을 꿇지만, 절망이라는 바이러스는 대중을 일거에 휘감아 버린다. 그만큼 인간은 공포에 취약하다. 이런 공포국면에서 언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수한 정보들 중에서 그나마 합리적인 준거를 제공할 것이라고 대중이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언론이 가장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사회면의 사건과 사고는 일과성이다. 하지만 경제적 사건은 단속적이 아니라 연속적이다. 충격은 충격을 낳고, 대중은 더 강한 공포를 요구하게 된다. 대중은 마조히스트이며, 언론은 사디스트다. 대중심리가 작동할 때 언론은 두 가지 행태를 보인다. 초기 합리적인 논조가 대세이던 언론이 대중의 주장에 매몰되어 버리는 현상과, 언론이 대중의 표면적 어젠다를 선점하며 대중을 끌고 가는 형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한다. 더구나 경제문제에서 이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언론은 뉴스를 다루지만 그 뉴스에는 사건과 사고가 중심이다. 대중은 사악해서 희망적인 뉴스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절망적인 뉴스에는 열광한다. 사람이 개를 물어야 하는 탓이다. 주식시장을 예로 들면 주가가 상승 할 때 상승 이유는 대중이 먼저 알고 대중이 어젠다를 선점한다. 상승하는 시장에 상승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배부른 사람에게 밥상을 들이미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락하는 시장에 출구로 몰려 서로 짓밟는 기사는 출구 쪽 상황을 몰라 초조해하던 대중들의 간절한 욕구를 충족시킨다. 주가의 하락은 언론의 입장에서는 사건과 사고다. 더욱이 그런 종류의 사건과 사고는 점점 극치점을 높이며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된다.
그 때문에 경제문제에서는 상황이 좋을 때는 대중이, 상황이 나빠지면 언론이 어젠다를 독점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대중은 우왕좌왕하며 언론과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내달린다. 하지만 대중이 정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부 현명한 사람들은 대중의 목소리와 대중의 요구를 반영하는 언론과 정보들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그 끝이 어디인지를 짐작한다. 결국 언론은 소수를 위해 복무하는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2년간 각 언론사 경제면을 한번 돌아보면 언론이 얼마나 철저히 대중심리에 복무했는지를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말 각 언론사 경제면에는 9월 외환위기설이 지면을 당당하게 장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