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안식년을
/언론 다시보기/ 김세은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세은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5.27 09: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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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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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기자란 너무 힘든 직업이다.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그런 중노동이 없겠다 싶다.
매일매일 기삿거리를 찾아 헤매고, 취재 과정에서는 크고 작은 장벽을 돌파해야 한다. 그렇게 취재한 내용을, 경쟁지를 의식하며 마감시간에 맞추어 글로 만들어내는 일은 왠만한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잣대에 부합하는 기사를 써내기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닐 터이다. 이에 더해 주말을 제대로 쉴 수 없다는 현실적 조건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그렇기에, 언론사마다 편차가 크다 하더라도, 대체로 기자는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적은 직종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기자의 직업만족도는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기자를 단순히 하나의 직업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자에 대해 유난히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될 수 있다. 일하고 돈을 받는, 단순한 직업으로 기자직을 바라보기에는 뭔가 헛헛하고 나아가 마뜩찮은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기자는 비록 굶더라도 우리 사회의 정의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이른바 청백리의 모습을 기자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정치 아니면 프로젝트 좇아다니느라 바쁜 교수들은 일찌기 선비의 자리를 포기했으되, 그래도 기자 대부분은 아직껏 우리 사회의 선비 역할을 견실히 해내고 있으리라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말 그대로 치열하게 머리와 몸을 쓰며 살아가는 기자들이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지치고, 나아가 한계를 느끼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신문을 펼쳐 보라. 얼마나 많은 지면이 입사한 지 불과 몇 년 안팎인 기자들의 취재로 채워지고 있는가? 요즘 유행하는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기자들에게도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기사의 양은 쥐어짜서 나올지언정 기사의 질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에게 재교육과 안식년 제도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언론대학원도 다니기 눈치보이는 현재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기자의 재교육을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유명무실하고 한정적인 재교육 제도를 대폭 정비, 확대하여 그 실제적 효용을 늘리는 방안을 도모하고, 그리하여 재교육이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가능한 시혜 혹은 특혜 성격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
교육 기회가 워낙 한정되어 있어 기자 생활 십 년이 넘어야 겨우 차례가 돌아오고 그나마 윗선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현 재교육 시스템으로서는 기자의 우수성을 지속가능하도록 뒷받침하지 못한다. 국내 대학이나 유관 기관과 연계하여 일상업무와 병행가능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세분화하고 확대해서, 기자들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생겨나는 다양한 의문에 대해 함께 해답을 모색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와 별도로 안식년 제도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안식년 역할을 하고 있는 현재의 외국 대학교 위탁프로그램을 확대하거나 기간을 조정하여 혜택의 폭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눈 앞의 이익을 잠시 덮고 장기적으로 바라본다면, 업무를 떠난 여유로움을 정기적으로 기자들에게 허락하는 것이 한국 언론의 질적 제고를 위해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 금세 알 수 있다.
그것이 다른 직업에서 좀처럼 가질 수 없는 호사라고 생각된다 하더라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머리를 쓰고 살아온 기자들은 분명 그만한 직업적 호사를 누릴 만 하다. 반 년 혹은 일 년 후 그들은 새로운 에너지와 열정을 가득 채워 우리 곁으로 돌아올 것이고, 만인에게 좋은 기사를 읽는 즐거움을 눈부시게 선사할 것이다.
정치판에 눈을 돌리는 기자를 비롯, 기자답지 않은 기자들이 많아지는 것에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겠지만, 평생 기자를 업으로 삼고 죽으나 사나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에 턱없이 부족한 제도적인 지원도 하나의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기자놈’을 욕하는 대신 어떻게 하면 기자를 ‘기자님’으로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지,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