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에 빠진 차 버리고 탈출' 취재후기

[사진보도부문] 연합뉴스 제주지부 김호천 기자


   
  ▲ 김호천 연합뉴스 제주지부 기자  
 
태풍 '나리'는 생각보다 일찍 제주로 들이닥쳤다. 새벽을 눈을 뜨자마자 집사람이 끓여 주는 라면을 먹고 전투복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제주시 월산동 주변 평화로 침수 취재를 마치고 애월읍 구엄리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10여분간 달렸을 때 누군가 길을 막아섰다. 그러나 급한 마음에 경고를 무시하고 회사차량인 코란도를 몰고 침수된 도로로 돌진했다. 아뿔싸...물을 먹은 코란도의 엔진은 풀풀거리다 이내 꺼지고 말았다.

견인차를 불러 타고 가다 애월읍 하귀리 일주도로에서 집사람이 끌고온 스포티지로 바꿔 탄 뒤 다시 취재를 시작했다. 시야를 가리는 강풍과 폭우를 뚫고 한림읍 수원리 입구 쯤에 다다랐을 때 침수된 반대편 도로에 흙탕물에 빠진 차량이 보였다.

이미 차량 침수의 경험을 한 나는 인도쪽으로 차를 올려 놓고 차량 안을 유심히 살펴봤다.

강풍을 타고 쏟아지는 폭우로 시야가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 렌즈를 70∼200㎜로 바꾸고 최대한 당겨서 차량안을 보았다. 이번에는 렌즈에 김이 서려 잘 보이지 않았다. 얼른 휴지로 렌즈를 딱고 다시 차량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갑자기 한 여성이 차량에서 나와 탈출을 시도했다. 순간적으로 셔터를 눌렀다. 멈춰선 나의 차량 뒤에 차를 세우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몇몇이 "어어.."하며 어쩔줄을 모르고 있는 사이 다행히 그 여성은 침수된 왕복 4차선 도로를 건너왔다.

아마도 그 여성은 너무 무서워 차량에 앉아 있다가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알고 탈출을 시도한 것처럼 보였다. 길을 건너온 그 여성은 넋이 나간 듯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한 운전자가 재빨리 그 여성을 자신의 차량에 태워줬다.

나는 그 여성이 안전하게 집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며 다시 취재 전선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다수의 중앙지가 그 사진은 실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 집사람에게서 보승이가 인터넷에 올라간 그 사진을 보고 ‘기자놈들은 사람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사진만 찍는다’는 댓글이 있었다며 “‘아빠가 사진기자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네티즌들의 말만 듣는다면 중학생인 예민한 우리 딸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진기자 가족들이 그런 마음의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진기자는 전후 사정을 모르고 내지르는 네티즌들의 비난처럼 비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현장을 누비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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