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언론과 한국언론
이활웅 재미 칼럼니스트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6.12.20 15:33:03
미국의 제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재임(1977-81)중에는 인기가 없어 재선에 실패했지만 퇴임 후에는 사회봉사에 헌신하는 일방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오른 말을 하고 바른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1994년 미국이 북한핵시설폭격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을 때 그가 평양을 방문하고 고 김일성주석을 만나 전쟁재발의 파국을 피하는 계기를 만들었던 일은 우리가 잘 아는 일화이다.
그는 최근 LA타임스에 내가 보는 팔레스타인(How I see Palestine)’이란 칼럼을 실었다. 이 글은 그가 얼마 전 출판한 팔레스타인에 인종격리가 아니라 평화를(Palestine: Peace Not Apartheid)’이라는 책에 대해 미국의 친 이스라엘 세력으로부터 허위, 왜곡, 반유대주의 등의 비난을 받은데 대한 반론이었다.
카터는 이 글에서 미국에서는 국회의원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평한 정책을 표방하거나 이스라엘의 국제법 준수를 촉구하거나 혹은 팔레스타인을 위해 정의와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와 같다고 지적했다. 또 언론도 막강한 이스라엘 로비의 영향으로 팔레스타인의 실정이나 참상에 대해서 충실하고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비난하면서 그 때문에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효과적인 정책수립이 제약받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런데 우리는 유사한 현상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은 한국 정계나 언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이 미국에서 받는 것 같은 특대를 받고 있는데 비해 북한은 팔레스타인이 미국에서 받는 것 같은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 현상이 확대되어 대북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여당은 항상 숭미사대하는 한나라당과 보수친미 언론으로부터 편파적인 공격과 지탄을 받고 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얼마 전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개성공단 축하행사장에서 북한여성과 춤춘 것이 정치권과 언론에서 문제되어 의장자신이 부적절한 처신이었다고 인정해야 했다. 딴 나라에서 일어났으면 전혀 문제될 수 없는 일이 북한에서 일어나서 문제가 됐던 것이다.
송민순 신임 외교통상부장관은 청와대안보실장시절 미국이 가장 전쟁을 많이 한 나라라고 말한 것이 언론에 보도되어 국회의 임명동의안 심의 때 큰 곤욕을 치러야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짧은 재임기간 중 항상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자주파 즉 반미파로 지목되어 애를 먹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북화해정책을 주창한다고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북한의 제2중대로 몰리거나 북한에서 온 사람인지 의심스럽다는 혹평까지 받았다. 또 자위수단으로 핵무기를 가져야겠다는 북한의 입장을 알만하다거나 북한이 핵실험을 했지만 냉정을 잃지 말고 차분히 대처해야한다거나 혹은 핵무기를 가져도 북한이 남한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해서,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으로부터 한심하도록 안일한 안보인식이라고 비난 받았다.
그런가하면 지난 11월 28일부터 30일까지 금강산에서 해방이후 처음으로 남북언론인대회가 열려, 6·15공동선언 실천, 외세 간섭과 전쟁위협 배격, 민족분열적 보도 배격 및 공정보도, 공동의 협력 사업 지속 등을 다짐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을 때, 정작 주류언론에서는 남의 집 잔치보다도 대수롭지 않게 보도했다. 심지어 지금은 10월 9일(북한 핵실험일)이후 시대인데 6·15 공동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었다.
보다 최근에는 여당이 내년 대선용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설에 대해 꿈도 꾸지 마라는 사설도 있었다.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관계를 결정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특히 북한핵실험이후의 한반도긴장완화를 위해 시급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사 이를 추진한다는 여당의 복안 속에 대선을 위한 계산이 깔려있다 하더라도 정상회담 그 자체는 개최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데 야당이나 보수언론이 정상회담이 남북관계발전을 위해 무익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것이 대선에서 야당에게 불리할까봐 반대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의도는 여당보다도 더 불순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00년 말까지 잘돼나가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2001년 이후 별안간 악화되어 현재의 위기국면까지 오게 된 경위를 공정하게 살펴보면, 미국은 모두 옳고 북한은 모두 그르다는 식의 고정관념으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제대로 풀어나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