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비용 고려하지 않는 이익계산


   
 
  ▲ 조이여울 ‘일다’ 편집장  
지난 지역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진 정책 공약은 단연 ‘개발’이었다. 뉴타운 조성, 각종 공단 착공, 골프장 설립, 도로 건설, 재개발 추진 등 온갖 개발공약들이 ‘지역발전’이란 이름으로 난립했다.

우리는 최근 새만금 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공사를 둘러싸고, 헌법에 명시된 환경권이 “막대한 공공의 이익” 논리 앞에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계산해 눈에 보이는 액수를 제시하며 ‘지역이익’, ‘국익’이라고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와 이를 개선 또는 복구하기 위해 들어갈 비용에 대해선 그 수치가 제시되지 않는다. 법원과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언론은 마치 환경권은 ‘이상’ 혹은 ‘이념’일 뿐이고 개발이익은 ‘현실’이라는 듯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고 천성산 터널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인해 공사가 지연돼 세금을 낭비하게 됐다고 탓하는 목소리가 크다.

우리 사회에서 개발은 이익이고, 환경은 중요하긴 하지만 피상적인 얘기라서 현실적으로 2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은 이유를 파고 들어가보면 언론의 역할이 상당하다 할 수 있다. 언론이 환경권에 대해 피상적으로 접근하고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며, 개발 이익을 논하는 이들의 주장을 담아줄 뿐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할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유행어가 된 ‘국익’이라는 말을 비롯해, 각종 ‘이익’ 개념을 전파하고 있는 매체들은 지금이라도 그러한 용어를 방만하게 사용해온 것에 대해 자성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새만큼 간척사업과 천성산 터널공사, 골프장과 도로 건설, 재개발, 뉴타운 조성 등이 누구에게 얼만큼 이익이며, 또한 누구에게 얼만큼 손실인지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보도해 온 것에 대해서다.

지금 우리 나라에선 갓 태어나는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피부염을 앓고 있다. 아이들이 ‘환경질병’을 많이 앓는 이유는 보다 약한 체력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의 몸이 그만큼 오염됐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각종 개발이 끊이지 않는 서울에선 미세먼지로 인해 평균 수명이 단축되고 있다는 보고도 잇따른다. 사실 수명 단축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살아있는 동안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양육자들은 아이들에 대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라고 기원한다. 백만 금을 얻어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다는 얘기는 옛 사람들의 말만이 아니라, 기실은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적인 행복과 만족의 기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피해로 인한 고통과 비용은 추상적인 것이고, 계산할 수 없는 것일까? 가정마다 아이의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과 비용, 아이와 양육자의 고통을 따져본다면 얼만큼의 비용이 산출될까.

‘공공의 이익’은 막대한 환경비용을 무시하고 이야기되어선 안 된다. 환경비용은 시간이 갈수록 가중된다는 점에서 더욱 큰 손실로 계산되어야 한다. 이제 개발논리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보내버려야 할 때다. 눈앞의 이해관계만을 좇는 정부와 지자체, 개발업자들이 개발이익을 논할 때 이를 비판해야 할 몫이 언론에 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동해안의 고래 혼획에 대해 ‘로또’ 당첨금을 소개해주는 수준의 보도를 하는 저널리즘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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